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矯導의 길

1961년 오늘 형무소가 '교도소'(矯導所)로 이름이 바뀐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죄인에게 벌이나 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바로잡아 주는 곳이 된 것이다. '형무소'라는 말을 만들어 낸 일본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형무소로 통하니 우리가 청출어람식으로 앞선 셈이다.
그럼에도 40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형무소'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구세대들의 오랜 습관으로 치면 그만이나 혹시 '교도소'가 말만의 생색일 뿐 실질이 따르지 않아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그 뒤 교도소 방면에서 들려오는 소문도 '교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더 그렇다. 얼마전 탈옥한 신창원이 쓴 수기도 그렇다.
"한 겨울에도 정좌하고 있다가 문앞에 경비교도대원이 보이면 마룻바닥에 꽝 소리가 나도록 절을 해야 한다"는 대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교도'와는 거리가 먼 가학적 '예절교육'이다. "피가 나도 멈추지 않고 매질과 기합이 계속되며..."에 이르면 교도는 폭력의 다른 말일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교도소에서 잔뼈가 굵다시피 한 신창원의 다른 말은 몰라도 이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교도소 인권'은 끊임없는 말썽의 진원이 되고 있다. 얼마 전 시민단체가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것도 그런 거이다. 그래서 교도행정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고 2~3년 뒤에는 민영교도소도 나온다지만 '교도'가 제값을 찾을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그렇듯 문제의 근원이 밖에 있기 때뭄ㄴ이다. 큰 죄인들은 접어 둔 채 작은 죄인들만 가둬 놓고 교도한다면 일이 처음부터 빗나간 것이다.
이런 우리 사회의 가치전도 현상이야말로 진짜 '교도'의 대상이다.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이 민영교도소의 허가를 따내지 말란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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