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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저주'

1922년 오늘 영국인 카터가 발견한 파라오 투탄카멘(BC 1370~52)의 묘는 역사상 최고의 보물찾기였다. 그 다음 세기에 조성된 세티 1세의 묘는 길이가 100m로 투탄카멘 묘의 10배나 되지만 도굴 당한 상태였다. 9세에 집권해 18세에 죽은 투탄카멘은 업적도 무덤도 대단치 않아서 무사히 보존된 것이다.
그의 묘가 보이지 않자 도굴꾼들은 그가 워낙 일찍 죽어 묘소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투탄카멘은 지금도 이집트 박물관에서 가장 편안히 잠자는 파라오가 됐으나 그 일에 관련된 이들은 무사하지 않았다 해서 화제였다.
카터의 발굴 비용을 16년간이나 대준 사실상의 주역인 영국의 카나본이 그 다섯달 뒤에 말라리아로 죽자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퍼졌다.하필이면 그가 말라리아에 물린 곳이 미라 얼굴의 상처난 부위와 같아서 소문은 더 요란하게 퍼졌다. 그가 죽을 때 카이로에 정전이 왔다느니 발굴사업에 참가한 한 이집트인은 부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느니...
실은 그 당시 정전은 자주 일어났고 발굴에 관여한 이들은 평균 23년이나 더 살았다. '파라오의 저주'는 카나본에 대한 '언론의 저주'로 볼 수 있다. 오랜 발굴로 돈이 궁한 카나본이 영국의 타임스지에 기사독점권을 팔았기에 그 신문을 중계보도나 하게 된 신문들이 악담을 퍼뜨린 것이다. 신문들은 파라오에 관에 쓰여진 '사자의 안녕을 방해하는 자에게 저주 있으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옆에는 '파라오의 이름을 알리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는 말도 있으나 그 부분을 묵살한 것은 말할 것 없다. 신문의 그런 전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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