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죄와 벌


"사형수는 처형장에서 생각한다. 서 있기에도 빠듯하게 좁은 바위, 끝 없는 암흑과 고독 그리고 폭풍의 대해에 둘러 싸인 바위에 선 채 수천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 해도 사는 것이 지금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인생인들 상관 없다고..." (죄와 벌). 도끼로 사람의 머리를 내려찍으면서 시작되는 '죄와 벌'은 세계문학의 정수라는 찬사보다는 음울하고 살벌한 분위기가 더 짙다.
이를 쓴 도스토예프스키도 '넋의 사실주의자'라는 찬사를 떠나 저승사자 같은 인상이 없지 않다. 그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1849년 오늘 그가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10년전, 그가 18세였을 때는 의사였던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 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으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는 저승 문턱까지 갔고 거기서 만난 저승사자들은 작품에서 줄곧 얼굴을 내민다.
이에 비하면 아버지의 죽음이 그의 생애를 바꾼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가 농노들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를 편드는 공상적 사회주의에 물든 것부터 그렇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밖에도 급진적인 소책자를 출판하려는 비밀결사에도 관여했다가 그해 9월 218명이 검거돼 21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 사형수 옷으로 갈아 입고 십자가에 키스하는 등 마지막 절차를 마친 순간 차르의 특사가 달려와 사면을 알렸다. 사형은 면했으나 시베리아에서 4년간 죄수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도 장교 출신인 그는 5년간 졸병으로 근무해야 했다.
시베리아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의 고질병인 간질 발작이 시작됐다. 그러나 '죄와 벌'에 눈뜬 그에게는 성경이라는 동반자도 생겼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