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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너의 이름으로...


"자유,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이 저질러졌던가?!" 프랑스 혁명 4년 뒤인 1793년 마농 롤랑은 단두대에 서서 이렇게 외친다. '롤랑 부인'으로 더 알려진 그는 프랑스혁명의 선두에 선 대표적 여성이었으나 공포정치의 와중에서는 1343명의 하나로 단두대에 피를 보탰을 뿐이다.
그것은 먼나라의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자유'를 무서워 한 적이 있다. 그 발단은 1951년 오늘의 원내 자유당 창당이었으나 당시 자유를 무서워 한 이는 없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는 동안 '자유'가 갈수록 혐오스럽게 됐고 그 절정은 바로 4.19 전날의 고대 시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날 시위대는 태평로의 국회의사당앞을 점거했으나 스피커가 없어 허둥대고 있었다. 때마침 지붕에 스피커를 장치한 차가 와서 학생들은 환호했으나 곧 "꺼져!"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스피커가 빙 한바퀴 돌았고 학생들은 다시 박수를 쳤다. 거기엔 '자유소리사'라고 쓰여 있었다. 스피커가 돌기 전엔 '자유'만 비쳐 학생들은 자유당차로 보았던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라는 말에도 놀라게 된 과정은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자유당이 사라진 뒤에도 자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비극이 깨끗이 사라지지 않은 점이다. 냉전시절 '자유'의 형제나 유사어 같은 말은 '평등'이 반의어처럼 색칠을 당한 것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가 미숙해서일 뿐 자유는 숭고한 것이다.
4.19로 자유당이 무너지고 이를 기념한 한 시비에 쓰인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로 시작되는 조지훈의 시를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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