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文史哲)'이라는 말이 있다. 인문학의 다른 말로도 통하는 이 말은 문학-역사-철학이 연관돼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사철에 통한다는 말은 서양의 '르네상스적 인간' 같은 것이다.1989년 오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41년만에 처음 비공산계로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하벨도 그 비슷하나 내용은 조금 다르다.
그는 '문사정(文思政)'에 능한 것이다. 대표적 문인이자 공산치하에서 오래 투쟁한 사상범 출신ㅇ늬 정치인이었다. 하벨의 아버지는 부자였으나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재산은 몰수되고 그는 부르주아의 아들로 몰려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해야 했다. 그러나 독력으로 공부해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1963년에 발표한 단편희곡 '옥외파티'는 관료주의적 타성에 젖은 사회에서 인간의 개성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부조리극이었다. 그러다 68년에는 벨러스트레이드 극장 상임 극작가가 된데다 프라하의 봄을 맞았으니 이중의 행운을 타는 듯했으나, 뒤이은 프라하의 겨울로 그는 작품활동이 금지된 신세가 됐다.
어쩔 수 없이 문(文)보다 사(思)에 경도된 그는 79년부터 3년반이나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89년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그는 시민포럼을 주도했고, 공산당이 백기를 들자 의회에서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 뒤 사회는 민주화 바람으로 어지러워지고 그 와중에서 나라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쪼개졌으나 두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에 경험이 없는 그의 '정(政)' 실력이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문학도 정치와 먼 것이 아니다. 하벨은 문학을 통해 전체주의와 관료주의의 폐해를 익혔다. 그가 문학을 통해 터득한 말의 힘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말은 어둠 속의 불빛이 될 수도 있으며 독 묻은 화살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