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나자 화제가 오른 고을이 있다. 노무현의 고향 김해나 그에게 몰표를 준 호남과는 거리가 먼 강원도 인제군이다. 그곳에서 노무현과 박정희는 사병이나 장군으로 복물했고 김대중은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며, 전두환은 그곳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했으니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는 것이다. 여기엔 빠뜨린 부분이 있다.
노무현은 그곳에서 군복무를 했을 뿐 아니라 전두환을 그곳으로 보낸 주역의 하나였다. 전두환이 백담사로 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5공 청문회였고, 노무현은 그 청문회에서 스타가 됨으로써 그 때부터 노풍의 기압골은 조성되기 시작한 셈이었다.
백담사에 은둔 중이던 전두환이 청문회에 나서자 노무현이 명패를 던져 청문회는 피날레를 장식하고 전두환은 다시 백담사로 돌아가던 모습도 어딘지 노무현과 백담사의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1990년 오늘 769일의 백담사 은둔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두환의 모습은 갈 때보다 밝아 보였다.
그것은 백담사에서 예불을 드리던 기사나 사진 그대로 전두환이 불교적 수행을 쌓아 세속의 번뇌를 잊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얼핏 야반도주하는 죄인처럼 갔던 그는 어느새 위엄있는 '전직 대통령'이 돼 있었다. 백담사 시절 모두를 용서했다는 등 그가 풍기던 불교적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는 세속의 한가운데 서 있었고 그 표정은 5년 뒤인 95년 12월 2일 구속을 앞두고 '골목성명'을 발표할 때도 바뀌지 않았다. 그 끝에 시작된 교도소 생활도 백담사처럼 그를 크게 바꾼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 백담사로 교도소로 가는 등 '성역'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