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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士 그리고 醫師



1951년 오늘 미국에서 서재필은 조용히 숨진다. 1.4후퇴로 정신없던 고국은 사후의 예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그런 만년과 달리 서재필은 많은 호칭과 최상급을 거느린 풍운아의 삶이었다. ㅡ그는 더러 '의사' (義士)로 불리는 바람에 한국 최초의 의사(醫師)라는 사실이 가려져 있다. 갑신정변으로 미국에 망명한 그는 의학을 공부해 교단도 섰으니 그는 두 의미의 '선생'이기도 했다. 영어를 익힐 겨를도 없이 망명한 길에 의사가 된 그는 좋은 머리와 나쁜 운세를 타고난 셈이다.
11살에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13세에 임시과거인 전강에서 장원을 한 것은 좋았으나 먼 친척인 김옥균의 신임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갑신정변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역적의 기록을 세우 ㄴ그는 망명하나 부모와 형 그리고 아내는 음독자살하고 동생 재창은 참형을 당한다. 두 살난 아들은 굶어죽고. 그 뒤로도 국운은 기울어 뺴어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 집안을 망친 이들은 줄지어 나왔으니 그는 이런 이들의 선두주자격이었다.
그가 미국서 제이슨으로 개명하고 현지여자와 결혼한 사실을 비하하는 이들이 없지않다. 그러나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젊은이가 까마득한 이역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어떤 선택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의사가 되고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진력했으니 두 가지 '의사'의 길을 걸은 셈이다.
1896년에는 다시 돌아와 독립신문을 창간했으나 수구파의 압력으로 되돌아갔다. 갑신정변이 그렇듯 독립신문도 친일신문이라는 구설이 없지 않으나 그는 25년의 범태평양회의에서 한국대표로 참가해 독립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래선지 92년 전남 보성 그의 생가에는 사당과 뒤이어 기념공원이 생겼다. 집안은 망쳤으나 가문을 망치지는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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