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7회 반탁승리 기념대회'는 승리를 기념하는 대회와는 멀어 보였다. "이번 대선은 보수세력이 허약해서 진 것이 아니라 보수다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서 진 것이다"는 연설이 우선 그렇다. 그것은 얼핏 반탁투쟁과는 인연이 멀어보이는 '보수세력'이 패했다는 말이지만 이 연설은 "보수를 대변했던 한나라당과 OO일보도 '우리'를 대변하지 못했다"고 이어졌다. 그것은 크게 놀라운 말은 아니나 반탁세력이 '보수세력'을 자처한 것은 새삼 눈길을 끌었다. 그러고 보면 '반탁반공 학생운동' 이라는 이름도 어딘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 모든 혼란은 모스크바의 3상회담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됐을 때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비롯된 셈이다.
신탁통치안은 강대국들이 한국인을 무시해 독립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고 반탁투쟁은 이에 항거한 것이라는 일반상식에도 혼란의 소지가 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반탁을 지지하던 좌익들이 찬탁으로 배신했다는 말도 그렇다.
신탁통치안은 내용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고 여기에 외신의 오보가 겹친데다 뒤이은 남북대결로 그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남과 북에서 보는 신탁통치 파동은 서로 다르나 남북한이 한 탁자에 마주앉아 이를 따질 길이 없으니 찬탁-반탁 논쟁은 '반탁'의 논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1946년 오늘 이승만이 기자회견에서 "신탁 지지는 망국을 꾀하는 사대주의자의 음모다"고 주장한 배경도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반탁운동의 결과는 비교적 뚜렷한 셈이다. '반탁 반공 학생운동'이 그렇듯 반탁은 반공과 접목돼 반세기 이상의 생명력을 누려 왔고 촛불시위 속에서 반미 구호가 나도는 요즘 부쩍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