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오늘 눈을 감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여러 단계에 걸쳐 죽은 셈이다. 1865년 영국 제국주의의 본무대인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인종차별주의 문학으로 식민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래서 1907년에는 '정글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으나 점차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져 쓸슬한 말년을 보내야 했으니 문학적으로는 이미 죽기 시작한 셈이다. 86년의 서울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백남준이 서울 도쿄 뉴욕을 무대로 해서 전세계에 보낸 우주 오페라 '바이 바이 키플링'은 그를 실명으로 죽인 셈이다.
죽인다는 말이 지나치다면 적어도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 뿐 이들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버림받은 셈이다. 따라서 키플링의 문학은 땅에 묻히고 그 위에는 바윗돌이 놓여 있는 듯하나 실은 그런 것도 아니다. 인도 전문가인 이옥순 박사가 지난 연말에 내놓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오늘날 한국 작가들이 인도 등 제3세계를 보는 눈이 아직도 키플링이 씌워준 색안경을 벗지 못한 상태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것도 인도에 가서 오랜 체험을 겪었다는 작가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인도를 '비문명적이고 가난하나 행복한 구도자들이 사는 나라'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그것이야말로 제국주의적 시각이라는 것이다. 소설속의 제3세계인이 굶주린 아귀나 야만적인 악당으로 나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임종국의 '친일문학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놀랍다. 우리는 그동안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친일문인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문학이 터잡고 있는 본바닥 제국주의 문학에는 무관심한 셈이다. 따라서 17년이 지났으나 우리는 다시 한번 외칠 만하다. '바이바이 키플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