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늘 박찬호가 LA다저스팀과 990만 달러에 1년간 계약을 한 것은 아쉬웠다. 우리 돈으로 126억원이나 되는 그 금액이 적어서는 아니다. 그 돈의 1%에 해당하는 10만 달러만 보태면 1000만 달러로 숫자가 한 자리 올라갈 수 있어서였다. 물론 1000만 달러는 한국의 산업계가 수출경쟁 끝에 올린 수출액과는 다른 수치다.
그것은 한국인이 '몸싸움'의 본바닥인 미국 프로야구에서 올린 액수다. 그 싸움터는 최근까지 동양인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인들에게는 금기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백인이나 흑인들에 비해 하체와 팔다리가 짧은 데다 탄력과 힘이 떨어지는 동양인들이 서양보다 먼저 종이와 화약을 발명했다고 생색을 내봤자 잠꼬대같은 소리일뿐이다. 프로복싱에서 흔히 나도는 1000만 달러대의 파이트 머니도 우리에게는 꿈같은 숫자였다.
물론 박찬호 이전에도 한국인이 세계의 스포츠계에서 이름을 떨친 적은 있다. 마라톤의 손기정은 물론 구기분야에서도 차범근은 1978년부터 88년까지 축구의 본바닥인 서독의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차범근의 연봉이 10만 마르크대를 맴돌아서인지 적어도 금액에서는 놀라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선지 박찬호가 94년 미국에 진출할 때 계약금은 120만 달러였으나 연봉이 고작 1만 7000달러였어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올해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겨 1420만 달러를 받게 돼도 놀라지 않았다.
제국주의 시절 백인들의 무기에 앞서 키에서부터 눌리던 동양인들은 이제 키는 물론 체력에서도 몸싸움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