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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화가' 밀레



1875년 오늘 숨진 밀레는 복제기술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화가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만종'이나 '이삭 줍기'가 크고 작게 수없이 복제돼 밀레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려서다. 그러나 복제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작가를 꼽을 경우도 그는 영순위 언저리다. 밀레는 유명해지다 못해 통속적 작가가 됐고 그의 작품은 '이발소 그림'이 됐다. 그런 밀레이기에 그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서울로 찾아 온 것은 새삼 반갑다.
지난 12월 14일 개막해 3월 30일까지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밀레의 여정'전에는 밀레의 작품에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 등 150점이 전시되고 있다. 밀레가 초기에 흉내낸 18세기 화가피에르 쉬블레라스와 밀레의 작품을 흉내낸 후세작가 고흐 세잔 등. 이들 사이에 놓인 밀레는 싸구려 이발소 작가가 아니라 18세기의 미술과 인상파를 연결시킨 미술사의 가교로 새롭게 떠오른다.
막상 밀레는 한 세기 이상 루브르 미술관 등에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보는 우리의 눈은 바뀌게 됐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농촌이 언제부터인지 '이삭줍기' 같은 풍경과 멀어지고 그 그림을 걸어 놓던 이발소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날 '만종'의 부부처럼 기구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던 우리 농민들은 이제 기계에 더 의지하고 있다. 그것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우리가 '밀레의 여정'전 같은 전시를 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데 필연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만종' 대신에 '자비심'이라는 새로운 그림과 연을 맺게 됐다.
농촌 여인이 어린 딸을 시켜 걸인에게 빵을 주게 하는 그 그림은 영원한 인류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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