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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聖殿'

1945년 오늘 폴란드로 진주한 소련군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시키나 환호성은 들리지 않았다. 독일군은 이미 9일 전 이 지역을 포기했기에 수용소는 유령 같은 사람들만 남아 있는 폐허였다.
그러나 이것은 아우슈비츠의 '수용소 시대'가 끝난 것일 뿐 그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시온 언덕'이나 '통곡의 벽'에 못지 않은 '아우슈비츠 성전'으로 새로운 신화의 현장이 된다.
"아우슈비츠의 400만명을 포함해 유태인 600만명이 홀로코스트로 학살됐으나 신의 선택을 받은 유태인들은 그 고난을 이기고..."
그것은 너무 생생한 현대사여서 믿음이 약하고 교리공부에 게으른 유태교도라도 쉬이 믿을 수 있는 '포스트 신약'같은 것이다.
그러나 신화이다 보니 과장이 심하다는 구설은 피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 해방 반세게를 맞아 뉴스위크가 그 진상에 의문을 보이는 특집을 실은 것은 놀랍다.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태인 숫자가 400만이 아니라 110만이나 150만으로 줄여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우선 놀랍다.
유태인의 자금력을 멀리 벗어날 수 없는 서구의 매스컴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더 놀라웠다. 실은 홀로코스트의 진상을 두고는 처음부터 의문이 제기됐으나 본격적으로 규명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반미가 용공이라면 서구에서 반유태주의는 나치즘이었다. 실은 유태인 희생자 숫자도 처음에는 800만이라고 하더니 제풀에 600만으로 줄어들었으나 그것도 두배나 부풀렸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팔레스타인 지방이 갈수록 아우슈비츠를 닮아가는 듯해서다. 자칫하면 그곳에는 또 다른 기념비가 생겨날 수 있다. "용서하지 말라. 물론 잊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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