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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화예술에 관심이 없는 이도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한림원)는 귀에 설지 않다. 그것은 서양 문화의 중심 같은 프랑스 문화에서도 심장 같다. 이 한림원은 1635년 오늘 추기경이자 재상인 리슐리외가 앞장서 프랑스어의 보존과 순화를 위해 설립된다. 유럽이 민족전쟁 시대에 돌입하기도 전에 민족의 구심점으로서 프랑스어를 인지한 것이다.
그 전통은 두 세기 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 이어지고 오늘날도 프랑스인들의 프랑스어에 대한 긍지는 잘 알려져 있다. 드골의 콧대도 바탕에는 프랑스어의 콧대가 깔려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아카데미는 프랑스어를 떠나 근대문화사의 심장으로 구실했다. 18세기에는 자유주의자와 보수파(카톨릭)의 논쟁 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탕은 크게 바뀌지 않아 출범 당시 27명의 종신회원이 40명으로 늘어난 정도다. 그러나 이들이 '불멸의 지성'으로 불리는 것은 종신제여서가 아니라 프랑스 문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불멸이어서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부럽다.
한국에서도 1954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비슷한 학술원과 예술원이 설립됐고 그 회원들도 사실상 종신제이나 불멸의 지성이라는 찬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렇다할 업적은 없는 채 이런 저런 비난의 소리만 들려오니 무소식이 희소식인 셈이다. 예술원 미술분과의 경우 1년에 한번씩 전시나 하고 회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상을 받는다는 평이 그렇다.
회원의 가입을 기존 회원들이 결정하는 제도를 두고도 논란이 많다. 기존 회원의 사고가 신입 회원을 통해 이어져 세대는 교체돼도 의식의 교체는 어려워서다. 그래서 1960년 식민사관의 대부였던 사학자가 학술원회장이 됐던 것은 새삼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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