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대륙을 상대로 항전을 한 것은 국민당 정권이 처음은 아니다. 1662년 오늘도 명나라 유신 정성공은 그곳을 점령하고 있떤 네덜란드군을 내쫓고 항청복명의 기치를 올린다. 그래서 대만은 중국사에 편입된다. 대만은 진 한 시대부터 그 존재는 알려져 있었으나 잊혀진 섬이었다.
1624년 네덜란드가 쳐들어 와 성을 쌓아도 관심이 없었다. 그 2년 뒤에는 스페인도 들어왔으나 1642년 네덜란드에 쫓겨난다. 이들은 내쫓은 정성공은 '국제적'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필리핀 마카오 류큐열도 등과 교역하던 해상군벌이었다. 그래서 일본여자와 결혼해 정성공을 나은 것이다. 따라서 반쪽만 한족인 정성공이 이민족인 청을 상대로 4대에 걸쳐 항쟁을 함으로써 인기가 더 높다.
그들 부자는 푸젠의 망명정권 아래서 싸우다 아버지가 포로가 돼 투항을 권고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22세의 아들은 의병을 모아 펑후제도 등 섬을 근거로 싸웠다. 그의 군대가 난징을 공격하는 등 위세를 떨치자 청은 연안 백성들을 내륙으로 옮겼다. 이에 정성공도 대만에 거점을 잡으나 곧 죽고 유업은 손자까지 이어진다. 손자대에 내분이 일어나서야 청은 뇌물공세로 겨우 대만을 평정한다.
최근 정성공의 존재가 정치적 상황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영화 ;영웅 정성공'을 내놓자 뒤질세라 대만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