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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오늘 베트남이 윤락녀들에 대한 교화작업을 시작한 것은 제2의 해방전쟁이었다. 베트남 통일은 사이공을 호치민으로 바꾸었고 그것은 매춘을 용납하지 않은 인물의 이름이었다. 전쟁이 폐허와 함께 윤락녀를 남기는 것은 1차대전 시절의 영국을 무대로 한 영화 '애수'에서도 볼 수 있으나 베트남의 경우는 심각한 데가 있었다.
'베트남 여인'이 남긴 발자취가 유난히 길고도 참담해서다. 물론 그것은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뮤지컬로 89년에 개봉된 '미스 사이공'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베트남 여인들은 베트남전을 정당화시킨 이 뮤지컬에서처럼 미국인들만을 대상으로 사랑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많은 나라 남성들에게 사랑을 팔아야했다. 박영한의 베트남전 문학 '머나먼 쏭바강'이 그렇듯 베트남 여인과 한국인들의 관계도 깊었고 그 흔적은 라이따이한으로 남아 있다. 기자는 베트남전 막바지에 사이공에 특파됨으로써 베트남 윤락녀들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통금이 8시로 앞당겨지자 벌이를 잃게 된 여인들이 호텔 입구로 몰려와 몸값을 덤핑하거나 거저 재워달라고 애원하던 모습이다.
그들 대부분은 전사한 월남군(남베트남)의 미망인들로 미국이 그들에게 준 보상금을 가로채여 한푼도 받지 못하고 밤거리에 나섰다는 소식은 놀랍기보다 끔찍했다. 그것은 월남군 포병이 보병으로부터 뇌물을 받아야 포를 쏘아준다던 타임지 보도와도 다른 놀라움이었다.
그래선지 이들을 교화한다는 외신은 반가웠으나 매춘은 제국주의를 몰아내기보다 어려운 모양이다. 사이공의 여인들이 헤매던 밤거리를 이제 그 딸들이 있따는 식이다. '호치민의 여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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