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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의 작가 왕리슝과 티베트의 망명 사학자 체링 샤카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세계의 화제가 됐다. 이 논쟁이 유독 눈길을 끈 것은 반체제 민주투사로 이름높은 왕리슝이 친티베트 인사로도 소문나서다.
왕리슝은 유럽의 진보주의 잡지 '뉴 레프트 리뷰'에 중국이 티베트에 양보하지 않으면 미국이 그 틈새를 비집고 분열을 획책한다는 글을 썼다. 그것은 얼핏 티베트에게 반가운 내용이나 샤캬에게는 그 행간에 가려진 허점이 첫눈에 드러나 반박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왕리슝이 중국 불교의 인과응보를 티베트 불교에 적용함으로써 티베트의 불교는 물론 그 역사도 곡해하고 있다고 했다. 복잡한 종교논쟁을 떠나서 이 사건은 티베트를 가장 잘 이해한다는 중국인도 티베트를 잘 못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광화문 철거를 반대했던 일본의 대표적 친한파 미술비평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의 미를 비애미로 곡해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왕리슝의 글에는 티베트의 어려운 앞날이 2중으로 투사된 셈이다. 중국과의 화해는 어려운 데다 외세라는 변수까지 있는 것이다. 그 외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10년 오늘 청나라 군대가 티베트에 쳐들어와 달라이 라마 13세가 인도로 망명한 것도 그렇다.
신해혁명 1년 전으로 집안일에도 바쁜 청조가 티베트까지 단속한 것은 영국 때문이었다. 인도를 거쳐 이곳에 진출한 영국이 티베트의 독립을 성원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그것은 일본이 그 무렵 중국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성원한 것과 같은 그림이다. 그 영국은 동아시아에서 사라졌으나 티베트는 중국과 미국의 각축선상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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