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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같은 일생

1930년 오늘 D.G. 로렌스는 영면하나 꿈자리는 편치 않을 것이다. 이승에서 '외설'시비가 생길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니 귀가 간지러울 수밖에 없다. 대표작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그가 죽은 뒤에도 모국에서 출판이 금지됐던 30년간은 더 그랬을 것이다.
반가운 것은 '외설작가'라는 말이 줄어들고 '천재적 예술가'라는 말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그것도 단순히 재능이 있다는 정도를 넘어 문학사조에 전환점을 마련한 천재라는 평가다. 산업혁명 이후 한세기가 지나 크게 바뀐 사회에서 아직 중세적 도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문학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문학에서 종교의식처럼 다루던 성을 인간적인 것으로 '현실화'해서다.
1885년 탄광촌에서 무식한 광부 아버지와 상류층 딸로 교사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삶 자체가 소설같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역시 외설시비로 시끄러웠떤 '무지개'처럼 현란한 것이었다. 교양 없는 남편에게 실망한 어머니는 로렌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았고 그것은 로렌스의 성격과 문학에 그대로 투영된다.
12년 노팅엄대 시절 은사의 부인으로 6년이나 연상인 프리다와 도피행각을 벌인 것도 그런 것이다. 로렌스는 약혼자를 버리고 프리다는 남편과 4명의 자녀를 버린 채 프리다의 모국인 독일 등으로 여행을 했다. 2년 뒤 그들은 정식 결혼을 하나 곧1차대전이 일어나자 프리다의 출신 때문에 곤경을 치른다. 대전이 끝나자 이들은 또다시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를 떠돌고 그 발자취를 작품으로 남긴다. 그래서 죽기 2년 전에는 피렌체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완성하나 외설 시비로 자비출판을 해야했다.
얼핏 고국도 도덕도 저버린 삶 같으나 세계를 좋아하고 '사랑'을 사랑한 삶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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