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순자가 말하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일식이나 월식이 있으면 (하늘의 뜻을) 구하고자 하고, 하늘이 가뭄을 내리면 기우제를 지내며, 거북점이나 시초 점을 친 뒤에 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구하여 그것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연출’로 민심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것을 ‘문식(文飾)’[정치적 연출이나 쇼]이라 생각하고 백성들은 이를 신령스럽게 여긴다.
‘문식(文飾)’[정치적 연출이나 쇼]이라 생각하면 좋은 일로 받아들일 만하지만, 신령스럽게 여긴다면 이는 재앙이 되고 말 것이다.
雩而雨, 何也? 曰: 無何也, 猶不雩而雨也. 日月食而救之, 天早而雩, 卜筮然後決大事, 非以爲得求也, 以文之也. 故, 君子以爲文, 而百姓以爲神. 以爲文則吉, 以爲神則凶.
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인류가 하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천둥과 벼락, 홍수와 가뭄 등의 기상 변화조차도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늘의 진노로 이해하였다. 하늘은 결코 요(堯)임금이 어질다고 해서 그를 살려두고, 걸·주(桀·紂)가 포악하다고 해서 그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
‘하늘의 도는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며,구하지 않아도 얻어진다.’
하늘에는 ‘상도(常道)’가 있고 땅에는 ‘상수(常數)’가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하지 않는 주체적 자아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인간의 ‘도리(道理)’를 말하고 소인은 자신의 ‘공리(功利)’만을 헤아린다.
천지의 변화와 음양의 조화는 사물에 있어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때로 괴이하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두려워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농사의 시기를 놓쳐 흉년이 들었다든가, 전쟁과 같은 사람에 의한 재앙 등은 참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을 놓아두고 하늘만을 생각한다면 만물의 실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복을 받기 위하여 새벽마다 기도한다고 해서 하늘에서 곧바로 복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 받을 만한 선한 행위를 땅에 심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아직도 십일조를 내야만 재물의 복을 받는다든가, 일천 번제를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사기를 치는 목사들이 있는가 하면, 목사를 주의 종으로 섬겨야만 복을 받는다고 믿는 무지몽매한 성도들도 있다. 그 돈으로 고기를 사 먹고 몸보신을 하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쓰든 하는 것이 훨씬 더 복 받는 효과가 빠른 길이다. 자신이 속한 교회 목사들의 말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불쌍한 중생들을 보면, 이젠 한심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생각마저 든다.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운 짓거리는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라는 간증을 빙자한 끔찍한 자기 자랑이다. 나치에 학살당한 육백만 유대인은 기도빨이 약해서 죽었고, 소말리아의 가난한 어린이는 기도가 간절하지 않아서 굶어 죽었단 말인가?
정말 기가 막힌 ‘가스라이팅’이다. 저 혼자만이 직통 신자인 양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라는 부끄러운 뻘짓은 이제 제발 좀 그만하고, 일용할 양식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의 행복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박황희 고전번역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