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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사법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증거(1)

유시민 / 작가

3천여 명의 대한민국 판사 중에 누가 제일 유명할까? 지귀연이다. 대법원장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5부 재판장 지귀연 판사는 안다. 왜? ‘마법의 산수’로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지귀연 판사는 구금기간을 날(日)로 계산하라고 명시한 형사소송법을 어기고 시(時)로 계산해 구속을 취소했다. 검찰총장 심우정은 즉시항고 포기 의사를 법원에 서면으로 제출하지 않고 윤석열을 석방했다. 마치 짜고 친 듯 손발을 맞추어 법률을 위반하면서 중대 범죄 피의자를 ‘탈옥’시킨 것이다.

지귀연 판사는 기이한 행위를 이어 나가고 있다. 내란 임무 주요 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과 노상원 등의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검찰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정보사 등의 현역 장교들에 대한 증인신문 비공개를 요청하자 즉각 받아들였다. 취재진도 방청객도 없는 법정에서 증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들의 재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은 전혀 알지 못한다.

윤석열 피고인에게도 갖가지 ‘특혜’를 주었다. 불구속 재판인데도 첫 공판부터 구속 피고인들이 드나드는 지하통로를 쓰게 했다. 기자들이 법정 풍경을 촬영하지 못하게 했다. 피고인이 변호인 뒷줄에 앉는 것을 용인했다. 이름과 직업 등을 묻는 인정신문에서 피고인이 해야 할 대답을 대신 해주었다. 윤석열이 ‘모두진술’을 명분 삼아 80분 동안 마음대로 떠들게 내버려두었다. 언론이 불만을 쏟아내자 4월 21일 두 번째 공판에서는 법정 스케치를 위한 촬영을 허용했지만 재판 진행 방식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시민들은 지귀연 판사가 전담하는 내란 수괴와 주요 임무 종사자 재판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심우정이 지휘하는 검찰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하기로 하고 오늘은 지귀연 판사와 법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오해가 없기 바란다. 인간 지귀연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판사 지귀연의 행위를 비평하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사법 시스템이 심각하게 고장 났다는 사실을 여러 면에서 보여준다.

시민들은 묻는다. ‘지귀연 판사는 왜?’ 여러 사람이 대학생 때부터 군복무 시기와 초임 판사 시기까지 그가 했던 독특한 행동에 대한 증언을 내놓았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형 로펌의 배후조종설을 비롯해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떠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답은 아니다. 지귀연 판사의 속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질문을 바꾸는 게 좋겠다. ‘지귀연 판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지귀연 판사가 왜 윤석열을 풀어주고 내란 사건 재판을 엉망으로 끌고 가는지 나는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할 바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행위와 그것이 가져온 결과뿐이다. 그는 법을 어기면서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을 했다. 비공개 재판을 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했다. 윤석열한테 관례와 상식에 어긋나는 특혜를 제공했다. 하나하나가 다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판사가 법률을 위반하고 헌법의 원칙과 상식을 짓밟아도 제지하거나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법정에서는 판사가 왕처럼 행세한다. 그래도 그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래도 되는가?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법관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귀연 판사는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그 자신은 알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누가 협박했을지 모른다. 매수했을 수 있다. 윤석열과 같은 극우적 사상을 지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가능성일 뿐, 어떤 경우인지 판단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그럴듯한 증거가 드러난다고 해도 당장 달라질 건 없다. 헌법 제106조에 따르면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ㆍ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지귀연 판사한테 어떤 조처를 할 수 있는 주체는 둘 있다.

첫째는 대법원장이다. 대법원장은 제2조와 제4조에 의거해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 법관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그렇게 할 리 없다. 그는 윤석열이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체포 명단에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과 현직 판사들을 포함시킨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한테 무언가를 기대해 봐야 헛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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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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