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자치도가 도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의 문을 열었다. 지난 19일 출범한 ‘‘먹거리 숙의기구’는 지역사회에서 먹거리를 단순한 생필품 차원을 넘어 복지·건강·농업·환경과 연결된 공공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혁신적 실험이다. 이는 전북이 ‘도민 중심 행정’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주목받는 정책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먹거리는 인간의 기본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특히 지역 먹거리 문제는 지역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안전한 식생활, 나아가 기후위기 대응까지 연결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은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고 도민은 소비자나 수혜자 역할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에 전북이 시도하는 변화는 바로 이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문제를 발굴하는 단계에서부터 정책 아이디어 제안까지 도민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먹거리 정책을 ‘행정의 영역’에서 ‘시민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숙의기구는 전북자치도 먹거리 기본조례에 따라 처음 설치됐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모둠별 회의와 워크숍을 통해 먹거리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직접 정책 제안서를 작성한다는 점에서 이 기구는 진정한 ‘도민 참여형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관영 도지사도 출범식에 참석해 “먹거리는 복지·건강·농업 등 삶 전반과 밀접하게 연결된 공공의 영역이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에서는 지역 농산물의 안정적 공공급식 공급 등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현안이 논의됐다. 이는 도민의 체감도가 높은 생활밀착형 정책들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숙의기구에서 제안된 의견이 단순히 회의록에 머무른다면 이 시도는 금세 빛을 잃을 것이다. 전북도는 숙의기구에서 나온 제안을 전북 먹거리위원회에서 면밀히 검토해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논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안된 정책의 추진 여부와 성과를 도민과 공유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으면 ‘도민 참여’라는 이름은 형식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전북의 이번 실험은 파급력이 크다. 먹거리 문제는 교육, 환경, 복지, 농업 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수의 정책 효과를 낳는 폭발력을 가진다. 특히 공공급식을 통한 지역 농산물 소비 확대 등은 지역 경제와 주민 복지, 환경 보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과제다. 더 나아가 도민이 정책 형성에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의 생활화라는 가치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
먹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다.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담는 전략 자원이다. 전북의 ‘먹거리 숙의기구’ 출범은 그 자원을 도민의 손으로 키워가겠다는 선언이다. 이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때, 전북은 ‘먹거리 정책 선도 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도민과 행정이 함께 만든 이 첫걸음이 전국의 본보기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