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이 집단휴학 1년 6개월 만에 일제히 복귀를 선언했다. 표면적으로는 ‘조건 없는 복귀’라는 말이 앞섰지만, 실상은 학사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귀환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집단 휴학으로 촉발된 의료 대란의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정작 그 중심에 있었던 의대생들과 이를 방조·조장한 윤석열 정부 모두 이 사태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외면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학사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와 윤석열 정부의 무능이 빚은 공동 붕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방치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은 2024년 2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시작됐다. 정부는 의사 부족 해소와 지역의료 정상화를 내세워 의대 정원을 2천 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추진 방식은 의료계와의 최소한의 신뢰 형성조차 고려되지 않은 일방적 밀어붙이기였다. 졸속 행정은 의료계의 반발을 부추겼고, 그 불똥은 환자와 국민에게 튀었다.
전국의 수련의와 전공의들이 줄줄이 현장을 떠났고, 학사일정에 전념해야 할 의대생들은 대규모로 휴학계를 제출했다. 결국 병원은 의료공백으로 혼란에 빠졌고, 응급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살릴 수 있는 생명이 꺼져 가거나 위협받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특히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다 골든타임을 놓친 경우도 허다했다. 말 그대로 ‘의료 붕괴’이자 ‘의료 참사’의 아비규환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중대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인 의대생들은 복귀 선언문 한 장으로 모든 상황을 봉합하려 하고 있다. 이번 공동 입장문 어디에도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이나 진정한 사과는 없다. ‘정부와 국회를 믿고 복귀한다’는 표현은 그동안의 집단행동을 마치 정당한 권리 주장처럼 포장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는 자신들의 이익을 사회적 명분으로 바꾸려는 전형적인 ‘면피’ 전략에 다름 아니다.
복귀 이후의 학사 처리 문제도 논란의 핵심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유급 대상 의대생은 약 8천 명으로, 전체 의대생의 절반에 육박한다. 원칙적으로는 유급 처리 후 새 학기를 시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방학 중 보충수업’이나 ‘계절학기’ 운운하며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특혜 요구이자, ‘형평성의 파괴’다. 같은 학교의 다른 학생들, 심지어 의대 내에서 정상적으로 복귀해 학업을 이어온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조치가 받아들여진다면, 공정사회는 허울뿐인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의대 본과의 실습 교육은 단순한 출결로 대체될 수 없는 필수 과정이다. 연간 40주 이상 이어지는 이 실습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의료인의 최소 자질을 담보하는 핵심 교육이다. 이 과정을 형식적으로만 채운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졸속 복귀와 특혜성 학사 유연화는 미래 의료인의 역량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한국 의료계 전반의 신뢰 하락으로 직결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사태를 촉발한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다. 처음 의대 증원 정책을 발표할 때도, 의료계와의 충분한 대화와 조율은 없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은 극대화되었고, 대통령은 “국민 생명보다 집단이기주의를 앞세운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정작 실질적인 해결 의지도, 강단도 보이지 않았다. 정책의 명분은 있었으되, 과정은 무너졌고, 그 결과 의료현장은 혼돈에 빠졌다. 문제는 지금이다. 정권이 바뀌자, 정부는 다시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복귀 선언에도 불구하고, 당장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유연한 학사 처리’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공정한 학사 기준을 세우고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것이 국민 신뢰를 다시 얻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은 단지 의사 수의 증가나 복귀 선언이 아니라, 그 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는가를 본다. 정권 교체가 ‘책임 면탈’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 다소 거칠었더라도, 그에 맞서 집단행동으로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은 의료계의 고질적 행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사과 없는 복귀는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무원칙한 복귀 수용은 다시금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전례가 될 뿐이다.
의료는 공공의 영역이다. 국민은 의료계가 ‘생명’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지켜내는지를 보고 있다. 의대생들의 복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출발선은, 진정한 반성과 책임 의식 위에 서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봉합만이 최선이다’는 식의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원칙과 공정이라는 사회적 기준의 재확립이다. 이것이 바로, 다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료 대란이라는 악몽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러한 전제가 지켜질 때 만이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