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부부에 대한 특검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연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범죄혐의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김건희에 대한 수사는 지하부터 꼭대기 층까지 범죄로 꽉 채운 범죄 백화점을 보는 듯하다. 층마다 다른 종류의 범죄혐의들이 가득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주가조작, 뇌물 수수,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정당 공천 개입, 각종 공공기관 인사 개입, 국가사업 개입 등 국정농단은 물론, 심지어 세계 문화유산을 유용하고 훼손하는 황후놀이까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혐의들이 쏟아지고 있다. 참으로 꼼꼼하고,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가 시험당한 기분이다. 3특검 중 김건희 특검은 수사 인력을 대폭 증원하고, 수사기간을 상당히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앞으로 또 어떤 범죄혐의가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연일 쏟아지는 윤석열·김건희 일가 범죄혐의 소식에 경악과 분노가 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깊은 걱정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법을 우롱하는 이런 범죄행위에 대한 집단적 내성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 첫 번째요, 또 다른 걱정은 도대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SNS를 비롯한 온갖 다양한 매체들이 사방에 널려있고 아이들이 거기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전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 범죄행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런 조처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긴 수사과정이 끝난 후 또 더 긴 사법적 처리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빨리 흡수하는 아이들에게는 모든 사법절차가 끝나기 전에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교육적 경험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정한 것을 교육과정이라 한다. 그런데 이 교육과정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과 같은 시간표 위에 표시되는 교과목 수업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계획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학습효과를 유발시키는 또 다른 교육과정인 잠재적 교육과정도 신경써야 한다.
교사가 사용하는 언어, 아이들 간 교우관계나 학급분위기, 교실환경이나 학교문화 등이 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포함된다. 이런 개념이 등장한 것은, 아이들이 단지 교과서를 통해서만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교육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아이들에게 끼칠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 성인들은 물론 아이들 역시 교과서로는 담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정보와 지식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 성인들은 그 무수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어떤 교육적 개입이 없다면 쉽게 편향에 빠지거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윤석열·김건희 범죄혐의들은, 아이들이 배워온 교과서와 너무 다른 현실, 너무 다른 세상을 아이들에게 날 것으로 쏟아내고 있다. 보통 사람의 범죄행위들도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한 나라 대통령 부부의 상상초월 범죄행각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특히 아이들 삶과 직결된 국가교육위원장과 대통령 부인이었던 김건희 사이에 뇌물이 오고 간 정황은 아이들에게는 더 특별한 일로 다가갈 수 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고 토론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혹시나 갖게 될 잘못된 정보나 판단들이 교정되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속에서 혼자 혹은 소수 또래들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교사의 생각을 주입하지 않되 사회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를 학교에서 다뤄야 한다는 보이텔스바흐 합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런 사회적 쟁점들을 다루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심지어 법적 제재대상으로 삼는 일이 벌어져 왔다.
200명 넘는 또래나 선·후배벌 학생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더 큰 충격과 상처가 되었을 세월호 사건 때, 학교에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계기수업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교사는 징계에 회부하겠다는 공문을 뿌린 곳이 대한민국 교육부다. 대통령 탄핵선고 시청을 금지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교를 옭죄었던 것이 대한민국 교육현실이다.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세월호 사건이나 대통령 탄핵을 아이들이 모를 수 있나? 없던 일이 되나? 오히려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다루어주지 않음으로써 아이들은 그 사건이나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때론 잘못된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 이런 커다란 사회적 쟁점일수록 오히려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성을 기르는 교육이며, 정치적 문제를 교육적으로 다루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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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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