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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청문감사인권관’ 제도 제대로 운영하자(2)

고상만 / 인권운동가
일부 경찰은 변호인이나 고소 대리인과 의견이 다르면 ‘자기가 수사권이 있다’고 대놓고 말한다. 대화를 한 것인지, 조롱을 당한 것인지, 싸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수사는 제 마음이잖아요’ ‘수사권은 저에게 있어요’ 등등. ‘당연히 수사관님 권한이십니다만 이런 걸 고려해 주십시오’ 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경찰의 태도에 불만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배수진 변호사만이 아니다. 최근에 만난 공익제보자 이상돈 씨 역시 ‘잘못된’ 경찰 수사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에 배치된 30대 초반의 ‘전문연구요원’과 기업주 등을 내부 고발했다. 의무복무 대신 기업에서 3년간 연구 업무를 하는 직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제도를 악용했다. 실제 근무는 고사하고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며 전문연구요원과 특수관계가 있는 기업주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씨는 이 사실을 병무청에 신고하는 한편 경찰서에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달여 만에 보내온 경찰의 수사 결과는 ‘각하’ 처분. 피고발인이 근무 안 했다는 사실과 회사가 허위로 문서를 작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각하 처분의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문제는 경찰의 수사 과정에 있었다. 경찰은 고발인 이 씨가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공익제보자 이 씨가 분노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고발인은 관련 증거가 있는 병무청에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것을 고발인 조사 당시 경찰에게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병무청에 이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한다. 피해자격인 또 다른 ‘관련 협회’에도 참고인 조사는 고사하고 전화 한 번 하지도 않은 채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발한 사람만 바보가 되었다. 이런 식의 경찰 수사를 믿고 맡길 수 있나.

이 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내부 고발한 방심위 직원 세 명 역시 잘못된 경찰 수사의 피해자다. 윤석열이 검사 재직 시절,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을 보도한 방송사들을 징계해 달라는 민원이 2023년 9월 방심위에 제기되었다. 방심위는 이를 토대로 심의한 결과 MBC 등 방송사에 1억 4000만원의 과징금을 의결한다. 하지만 이후 방심위 직원 3명이 내부 고발에 나섬으로써 추악한 진실이 폭로되었다. 민원인 40여 명이 사실은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들이었으며 이들이 제기한 민원 100여 건이 오타까지 똑같은 이른바 ‘복사해서 붙이기’ 민원이었다는 ‘공익신고’였다. 내부 직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국민권익위에 신고하는 한편 언론에 제보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2024년 7월 25일, 경찰의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류 전 위원장을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만으로 검찰에 송치한 반면, 민원 사주를 통한 ‘업무방해’는 불송치 결정한 것이다. ‘민원 내용이 유사하여 의심은 되지만 심의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류희림을 불송치 처분한 경찰이 류희림 대신 방심위 내부 제보자 세 명을 민원인 개인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한 것이다. 경찰은 벌 줄 사람에게는 눈 감고 상 줄 사람에겐 벌을 준 것이다.

지금의 경찰을 이대로 두고 수사권을 줘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과 함께 경찰 개혁이 이루어져야 국민이 공정한 수사로 이익을 볼 수 있다. ‘거악’ 검찰로 인해 경찰의 문제가 방치되면 피해는 결국 국민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경찰이 개혁될 리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방법의 하나로 경찰 ‘청문감사인권관 제도’의 전면적 외부 개방을 주문한다.

1999년 6월, 김대중 정부 당시 각 경찰서마다 설치한 ‘청문감사관’(현 ‘청문감사인권관’, 이하 ‘인권관’) 제도는 획기적인 경찰 개혁 조치 중 하나였다. 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경찰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행태와 관련하여 국민의 억울함을 듣고 민원을 해결하는 기구였다. 문제는 인권관을 맡고 있는 사람의 신분이다. 현직 경찰 신분의 과장급 간부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경찰 내부자끼리 좋게 좋게 해결한다’는 비판과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본래의 취지에서 변질되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인권관 제도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한데 왜 그럴까? 혹 국민이 너무 많은 불만을 제기할까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정부는 경찰 개혁을 위해 외부 인사 중심인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경찰위원회’가 대동맥이라면 각 경찰서마다 설치되어 있는 ‘청문감사인권관’은 실핏줄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찰 신분이 아닌 사람이 인권관을 담당해야 제대로 된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겠나. 이를 통해 인권관 제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럴 때 경찰 수사에 대해 억울하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검찰개혁 잘했다는 소리가 커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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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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