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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한가위, 따듯한 나눔과 情으로 피어나라

김관춘 / 논설위원
윤석열이 저지른 12.3 내란 사태가 아직도 다 정리되지 않아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혐중 시위를 주도하는 극우집단의 준동과 함께 계층 간, 진영 간 반목과 대립이 격화되면서 주변은 어수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 곁에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가 찾아와, 모처럼 만에 얻은 긴 추석 연휴에 고향을 찾으려는 귀성객들과 이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한다. 갈등과 분열, 불안과 혼란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자연의 이치는 그 어떤 소란에도 흔들림도 없이 제 길을 가고 있다.

추석은 가을을 여는 문이다. 유난히 파란 하늘은 높이 치솟아 머리 위에 펼쳐지고, 저 멀리 겹겹이 겹친 산줄기는 한껏 선명해져 시야 가까이 다가온다. 맑고 삽상한 바람은 피부를 스치며 어느덧 마음 깊은 곳을 흔든다. 그렇게 바람결 하나에도 사람의 온기, 오래된 사연,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는 계절이 가을이다. 웬만큼 훈훈한 이야기에도 눈가가 촉촉해지고, 스쳐 들은 옛노래 한 자락에도 가슴이 찡해지는 계절. 그 순수의 감성이 문득 깨어나는 가을의 초입에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있다.

추석은 곧 결실의 계절이다. 봄·여름 내내 땀 흘려 뿌리고 가꾼 것들을 거둬들이는 시기. 고향 농가의 마당에서는 풋풋함이 채 가시지 않은 햇곡식이 타작 소리와 함께 쏟아지고, 지붕과 울타리에는 탐스럽게 익은 호박과 박이 매달려 둥글게 빛난다.

드넓은 들판에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수확을 앞둔 온갖 곡식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결실의 노래를 부른다. 풍요롭고 찬란한 수확의 계절 한가운데 서 있는 날, 그래서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으로 상징되는 넉넉함의 동의어다.

그러나 이 풍요로움의 그늘에는 늘 빈 자리가 있다. 지난 봄과 여름, 산불과 극한 폭우에 삶의 터전을 잃고 수십 년 간 쌓아온 결실마저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이웃들이 있다. 남들은 햇곡식과 과일을 한아름 거두어 들이지만, 거둘 것 하나 없이 텅 빈 손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가을밤 둥근 보름달은 모두에게 공평히 빛을 내려주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 달빛은 차라리 잘 구워진 찐빵처럼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축제의 한가운데에서조차 마음마저 아리고 시린 사람들이 있다.

추석은 축제다. 농경 사회를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추석은 일 년 중 가장 큰 잔치였다. 각자 수확한 만큼 나누어 지고, 선물 꾸러미를 바리바리 싣고 고향집을 찾는다. 모처럼 모인 가족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웃음소리를 곁들여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 사는 기쁨을 나눈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처럼, 고향이라는 뿌리로 돌아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을 쌓는 시간이다. 그러나 돌아갈 집조차, 성묘할 묘소조차 잃은 이들도 있다. 지난 계절의 산불과 폭우, 재난이 남긴 상처가 깊어 여전히 고향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의 북적임 속에서 그들의 빈자리는 더욱 또렷이 드러난다.

추석은 또한 비움의 계절이다. 한껏 차오른 달도 머지않아 기울듯, 꽉 찼던 풍요로움은 곧 텅 빈 겨울로 넘어간다. 농부는 거둬들인 곡식을 다시 대지에 나누고, 들녘은 어느새 허허롭게 변한다. 추석은 바로 그 "꽉 참에서 텅 빔"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서 있다. 그렇기에 추석은 단순히 풍요의 잔치에 머무르지 않고, 나눔과 배려의 의미를 더욱 절실히 일깨운다. 가진 자는 없는 이에게 베풀고, 가득한 마음은 비어 있는 마음과 손을 채워준다.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사람 사는 맛"을 느끼는 사회를 이루는 것, 그것이 추석의 참뜻일 것이다.

요즘 우리의 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경쟁과 갈등, 불안과 고단함 속에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듯하다. 하지만 추석만큼은 다르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가족·친지와 함께 웃고 먹으며, 그동안 묻어두었던 따뜻한 마음을 꺼내 놓는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나누는 밥 한 그릇, 함께 올려다본 달빛 한 자락이 사람의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엮는다. 바로 그 미풍양속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올해 추석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사연을 안고 보름달을 바라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풍요의 달이, 또 다른 이에게는 그리움과 허전함의 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달빛은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내리쬔다. 그 빛을 매개로 우리 마음 또한 이어져 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내미는 따뜻한 손길, 작은 배려와 나눔이 모여 추석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부디 이번 한가위만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오랜 세월 이어온 미풍양속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 고향집 사랑방에서, 도심의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혹은 홀로 창가에 앉아 달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속에서도 따스한 情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따뜻한 정이 차오를 때, 비로소 우리는 추석의 참뜻을 되새기며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삶이 넉넉하고, 모두의 마음이 풍요로운, 정겨운 한가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쓴날 : [2025-09-30 13: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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