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내년도 긴축 재정안 추진 과정에서 야당과의 갈등이 격화된 끝에 9월 8일 의회 신임투표에서 패배, 내각 총사퇴를 결정했다. 그 배경에는 GDP 대비 114%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준의 국가 부채와 유로존 내 최악의 재정 적자(2024년 기준 적자율 5.8%)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지출 동결·공휴일 축소 등 강도 높은 긴축책을 내놨으나, 대규모 시위와 정치권 반발로 결국 예산안 통과가 좌절됐다.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이미 EU가 정한 적자율 한계(GDP 대비 3%)를 크게 상회해, 유럽연합 집행위가 무리한 적자를 개선하기 위한 특별 절차를 개시했고, 신용평가사 피치와 S&P·무디스가 최근 연달아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3.5%까지 뛰었다.
재정 위기가 심화되면서 세대 갈등, 대규모 시위, 정부 불신임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극좌·극우 정당 모두 긴축 반대로 결집하고, 마크롱 대통령은 2년 만에 5번째 총리 임명이라는 기록적인 정치 불안정에 직면한 상황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2년 전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는 2022년 9월 취임 이후 대규모 감세와 에너지 보조금 확대를 골자로 한 '미니 예산안'을 발표했다. 약 450억 파운드 규모의 감세에 대해 재정적 충당 계획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로 인해 영국의 재정 적자 확대와 국가 신용도에 대한 우려가 금융시장에 급격히 번졌다.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감세안 발표 직후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고, 영국 국채금리가 급등했다. 영란은행이 국채를 긴급 매입하며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으나 여파는 수습되지 않았고, 정치권 내에서도 강한 반발과 연쇄 사임이 이어졌다. 트러스 총리는 결국 여당 지도부와 의원들로부터 신임을 잃고, 취임 44일 만에 전격 사임했다.
영국은 여전히 막대한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 회복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 금리를 주요국 중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 최근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5%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의 시선을 빼앗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보다 더 중요한 세계 경제의 이슈는 정부 부채이다. 주요 국가들의 총리를 갈아 치울만큼 폭발력이 강한 경제 문제이다. 주요국들은 이미 높은 정부 부채 비율과 높은 재정 적자 비율이라는 치명적인 조합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연초마다 정부 부채 상한선을 놓고 여야가 오랫동안 대치하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이더라도 막대한 재정 적자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경제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이렇듯 주요 국가들의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음이 확인되고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 비율이 단연 심각한 나라는 일본으로, 무려 200%를 넘어섰다. 영국 역시 100% 근방에 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를 겪었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은 10여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부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OECD 평균 정부 부채 비율도 이미 1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높은 재정 적자 비율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 재정 적자 자료를 살펴보면,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이 GDP 대비 5%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국가들이다. 앞서 정부 부채가 높다고 언급된 나라들이 재정 적자 또한 높으니, 정부 부채가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일본은 이미 부채가 너무 높아 더 이상 늘리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
막대한 정부 부채와 지속적인 재정 적자는 정부의 경제 정책 재량권을 심각하게 제약한다. 우선,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국방, 사회보장 등 필수 재정을 늘리기가 어려워진다. 일부 국가에서는 재정 지출 대비 이자 비용이 세금으로 걷은 돈의 8% 이상에 달하기도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하지만, 정부는 재정정책을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 한 팔이 묶인 운동선수와 같은 처지가 된다.
여기에 더해 금융정책이라는 다른 한 팔마저 묶여 정부는 이자율을 마음대로 낮추지 못한다. 정부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팔기 위해서는 높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인플레이션 우려뿐만 아니라, 막대한 미국 채권을 사줄 투자자가 없을 경우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 채권을 서서히 팔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운다.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모두 같은 상황에 놓여 있으며,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양팔이 모두 묶인 선진국 경제 정책 당국은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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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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