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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제 못 세운 채 특검만 쳐다보는 정부(1)

김종대 칼럼 / 전 국회의원
1993년 문민정부의 개혁은 단순한 하나회 청산이나 군 인사 재조정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스스로의 혁명’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단 11일 만에 군을 장악하고 있었던 정치 사조직 하나회를 단칼에 숙청했다. 동시에 20조 원 규모의 대형 무기 도입 비리인 율곡사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단행해, 군 비리의 고리까지 끊어냈다. 그로써 민주주의 체제에 내재한 군사 권력의 잔재를 스스로 분해하며, 국민적 지지를 얻은 ‘문민통제의 제도화’를 이뤘던 것이다.

반면 2025년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12·3 내란 청산과 군 인사 파동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내란 가담자들이 여전히 진급하고, 해병 순직사건 외압 관련자가 대령으로 승진하는 현실은, 권력이 스스로의 손으로 변화와 개혁의 칼을 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방위와 법사위의 여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문민정부의 하나회 척결은 ‘전격적’, ‘비공개’, ‘비타협’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3월 8일, 당시 육참총장 김진영, 기무사령관 서완수, 특전사령관 김형선, 수도방위사령관 안병호를 즉시 경질했다. 이는 하나회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군 쿠데타 핵심 라인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조치였다. 숙청은 총 네 차례에 걸쳐 단행되었고, 두 달 만에 40여 명의 장성이 해임·전역당했다.

이로써 군 내부의 ‘사조직-정치권-방산비리’의 연결 고리가 동시에 끊겼다. 그 배경에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와 감사원의 특별감사, 그리고 국방부 지휘체계의 전면 개편이 있었다. 문민정부가 내세웠던 “신한국군의 원년” 선언은, 개혁의 주체가 바로 정부 자신이었음을 증명한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내란 세력 청산을 특검에 맡겼다. 국방부는 ‘내란 연루 여부를 블라인드 처리한 진급 심사 매뉴얼’을 이유로 내란 가담자들의 진급을 허용한 뒤, 여론이 폭발하자 뒤늦게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안규백 장관이 국회에서 군 장교들의 내란 특검 소환 조사는 “참고인의 경우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며 “나중에 문제가 발견되면 시정하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하고 나선 것이다. 즉 국방부는 아무런 자체 계획이 없다.

내란과 관련된 핵심 인사들, 특히 비상계엄 실행계획에 가담했던 장교들이 진급 명단에 포함된 것은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니라, 군 내부 기득권 구조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사정이 있다면 누구든 진급은 할 수 있다. 단지 의혹만으로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 맞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정책으로 응답해야 한다. 육사 엘리트 파벌주의를 해체하고 능력과 전문성으로 군을 재편하는 개혁 과제 정도는 내올 수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내란 세력의 토양이 된 군사 권력을 해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어 개혁의 주체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은 ‘정치적 통제’의 차원에서 문민통제를 확보했다. 하나회 출신을 숙청하고, 대통령 직속의 군 보고체계를 단일화함으로써, 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없도록 길을 닦았다. 특히 12·12와 5·17의 주역들을 명예 없이 퇴역시키고, 군령권을 국방부·청와대 중심으로 전환한 것은 당시로서는 거대한 구조 변혁이었다. 육사 중심 체계 아래 있었던 군 인사 제도도 다변화되어, ROTC 출신 임재문이 최초로 기무사령관에 임명되고, 공군대장 이양호가 육군 독점이던 합참의장에 오르는 변화가 이어졌다. 문민정부는 주관적 문민통제, 즉 정치권력의 의지를 통한 통제에 성공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그 다음 단계인 ‘객관적 문민통제’였다. 군의 소수 엘리트 파벌주의, 육사 중심주의, 방산비리와 정보라인의 폐쇄적 구조를 제도적으로 개혁하고, 법에 의해 문민통제를 실현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에 대한 개혁 의제를 정립하지 못한 채, 특검만 쳐다보고 있다. 내란 수사나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 모두 특검의 몫으로 돌렸고, 국방부는 “확인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개혁은 어느 순간 ‘위임된 행정조사’로 축소되었고, 정부 스스로의 통치권적 개입은 사라졌다.


1993년 문민정부의 개혁이 자기혁신이었다면, 2025년의 개혁은 자기합리화에 그치고 있다. 내란과 외압의 흔적이 여전히 남은 군 인사 시스템 속에서, 일부 세력은 “정권이 바뀌어도 군의 기본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적 진단을 내놓고 있다. 특히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의 외압과 관련된 법무관이 대령 진급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정부가 방산비리와 내란 후유증을 동일한 윤리적 공백으로 취급했음을 드러낸다. 특검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박정훈 대령을 항명으로 몰아 위증한 해병대 장교들은 직무 배제가 된 적이 없다. 오히려 외압 당사자들이 해병대 거의 모든 요직을 꿰차고 있다.

결국 개혁의 의지 부재는 인사 논란으로 직결되었다. 내란 가담자가 진급 명단에 오르고, 외압 관련자가 승진하며, 국방수뇌부는 과거와의 단절에 망설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개혁을 외주화한 정치의 산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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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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