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전북이 여는 농촌 회생의 길, 농어촌활력재단에 거는 기대

김관춘 칼럼 / 논설위원
전북특별자치도가 전국 최초로 ‘전북농어촌활력재단’ 설립을 본격 추진한다. 내년 상반기 조례 제정과 법인 등기 절차를 마치면 하반기쯤 공식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말 행정안전부의 최종 승인으로 문턱을 넘은 이번 재단 설립은, 단순한 행정기구 신설이 아니라 농촌소멸 위기에 처한 전북 농어촌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중대한 이정표라 할 만하다.

작금의 농촌은 그야말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전국 농가인구는 2010년 306만 명에서 2024년 2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고, 청년농업인은 같은 기간 69%가 줄었다. 전북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14개 시군 중 10곳이 인구감소지역, 13곳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마을이 사라지고 학교가 문을 닫으며, 고령화와 과소화가 생활 인프라 붕괴로 이어졌다. 문화를 비롯해 의료·복지·교육 등 기본 서비스조차 받기 힘든 지역이 늘어나면서 농촌과 도시 간 삶의 질 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전북도는 농촌문제 해결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전문기관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인식해 왔다. 2015년 전북농촌융복합지원센터, 2017년 전북농어촌종합지원센터, 2019년 전북농어업농어촌일자리플러스센터 등 다양한 형태로 대응해 왔지만, 위탁·보조 중심의 한계는 뚜렷했다. 사업의 공공성, 지속성,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전북도는 근본적인 구조 개편에 나섰다. 올해 3월 농촌경제사회서비스활성화지원센터를 구축하고, 4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국교육훈련기관 지정을 받았다. 이어 10월 29일 행안부 승인으로 ‘전북농어촌활력재단’ 설립이 확정되면서 농촌문제 해결을 위한 ‘3박자 체계’가 완성됐다. 재단은 이들 기관을 통합 운영하는 실질적 구심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총 48억 원 규모의 예산과 3억 원의 자본금으로 출범할 재단은 올해 준공된 4층 규모의 농촌경제사회서비스활성화지원센터를 거점으로 삼는다. 단순히 행정 보조기구가 아니라, 농촌경제 활성화·공동체 회복·생활서비스 개선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농촌 회생의 플랫폼’이 될 전망이다. 도민 7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 이상이 지역발전, 일자리 개선, 생활 여건 향상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는 재단 설립이 단지 정책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 도민 체감형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재단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농촌현장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탁상행정식 접근이 아니라, 마을 단위의 주민 주도형 모델을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농촌문제는 외부 전문가보다 지역주민이 더 잘 알고 있다. 주민과 행정, 민간이 협력하는 ‘상향식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둘째, 청년 유입과 일자리 창출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령화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재단은 농촌 일자리와 창업 지원, 사회적 경제조직 육성을 통해 청년들이 농촌을 새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농촌의 지속 가능성은 인구 구조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셋째, 농촌 삶의 질 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다. 의료·돌봄·교통·문화 등 생활서비스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생존 인프라다. 재단은 이들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기획·운영하여, ‘살고 싶은 농촌’, ‘돌아오는 시골’을 만드는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행정 지원을 체계적으로 연계해 공공서비스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넷째, 지속가능한 재정 운영체계 구축도 관건이다. 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지방비 의존을 넘어 중앙정부·민간 협력, 지역순환경제 기반의 자생적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 단기 사업 위주의 예산이 아니라 장기적 전략 프로젝트 중심의 투자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전북농어촌활력재단의 출범은 단지 한 지역의 실험이 아니다. 전국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농촌소멸 위기에 대한 선도적 대응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북이 성공 사례를 만든다면, 이는 곧 국가 차원의 농촌재생 정책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제도적 틀’을 넘어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행력이다. 전북도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행정역량을 바탕으로, 재단을 실질적 변화를 이끄는 기관으로 육성한다면 농촌 소멸의 사슬을 끊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전국 최초의 농촌문제 해결을 고민할 수 있는 재단 설립을 승인받은 것은 전북도가 농촌문제 해결 선구자로서 국가적 사명을 부여받았다. 보편적 농촌생활서비스 전달 체계를 잘 만들어서 활력농촌 조성을 견인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북은 이미 ‘농생명 산업의 중심지’이자 ‘균형발전의 실험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농어촌활력재단이 더해진다면, 전북은 ‘지속가능한 농촌 재생의 모델지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농촌을 살리는 일은 곧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이다. 전북의 이번 도전이 전국 농촌의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


  • 글쓴날 : [2025-11-05 14:53:05]

    Copyrights ⓒ 전북타임즈 & jeonbuktimes.bstor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