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초고령사회 전북, 지역이 돌보는 돌봄체계로 가자

김관춘 칼럼 / 논설위원
“돌봄은 제도보다 공동체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 ‘노후의 품격 있는 삶’을 풀어가는 핵심 열쇠를 제시한다. 전북자치도가 내년부터 전 시‧군에 걸쳐 본격 추진하는 통합돌봄체계 구축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대적 대응이다. 돌봄은 이제 개인이나 가족의 부담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공공의 과제가 되었다.

전북의 고령화율은 지난 9월 기준, 26.3%로 전국 평균(20.9%)을 크게 상회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명 중 1명을 넘어선 초고령사회다. 노인 인구의 급증과 함께 의료비 부담, 요양시설 의존, 사회적 고립, 돌봄 공백 등 복합적 문제가 이미 심화되고 있다. 기존의 복지·보건 전달체계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의료, 요양, 돌봄, 주거를 통합적으로 연계해 지역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통합돌봄체계’는 시대적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전북자치도는 2026년 3월 시행 예정인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이미 14개 시‧군 전체를 포괄하는 통합돌봄 시범사업을 가동했다. 2023년 전주시 1개소에서 출발한 시범사업은 올해 2개소, 내년 9월에는 도내 전 시군으로 확대되며 사실상 ‘전북형 통합돌봄 모델’의 전면 구축 단계로 진입한다.

현재 전주시는 예산지원형, 군산·익산·정읍·남원·김제·진안 등 13개 시군은 기술지원형으로 참여해 지역 여건에 맞는 돌봄 연계체계를 정비 중이다. 시군별로 전담 조직 신설과 조례 제정을 병행하며 제도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실제로 전주, 익산, 정읍, 남원, 김제 등은 이미 조례 제정을 마쳤고, 올해 안에 전 시군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도 차원에서도 지난 10월 ‘전북특별자치도 지역돌봄 통합지원에 관한 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도적 틀이 완비됐다.

전북도는 이를 토대로 내년까지 통합돌봄 전담조직을 전 시군에 설치하고, 도 본청 내에도 전담 T/F팀을 신설해 각 시군의 추진을 총괄·지원할 계획이다. 나아가 사회서비스원, 의료·복지 전문가, 현장 종사자 등이 참여하는 ‘전북특별자치도 통합지원협의체’를 구성해 행정과 현장의 간극을 좁히고 협업 체계를 강화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의 현장성’과 ‘도민 체감도’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전북도는 이미 국비 57억 원을 포함한 115억 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해 전담인력 인건비, 연계체계 운영비, 지역돌봄서비스 확충 등 실질적 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전주, 군산, 정읍, 남원, 김제 등 5개 시군에서는 22개 유형의 다양한 돌봄서비스가 운영 중이며, 독거노인 방문건강관리, 재가요양 연계, 주거환경 개선, 이동지원 등 구체적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다.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분명하다. 도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자립적인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즉 ‘지역사회 기반 돌봄(Community Care)’의 정착이다. 요양시설로의 이주나 가족의 과도한 부담이 아니라, 익숙한 지역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삶을 이어가는 돌봄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첫째, 전문 인력의 확보와 지속적인 교육이 중요하다. 돌봄 현장은 행정과 달리 인간의 세심한 관계와 신뢰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현장 인력의 역량이 곧 서비스의 품질을 좌우한다. 전북도가 단계별 교육과 워크숍을 병행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만, 향후 도 단위의 통합 인력풀 관리 시스템과 직무 전문화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

둘째, 지역 간 격차 해소도 핵심이다. 전주는 이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나, 농촌 지역은 인력과 시설, 이동 접근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도는 시범사업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지역 간 편차를 분석하고,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통합돌봄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장기 복지 인프라이다. 중앙정부의 국비 지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지방비, 민간 협력, 사회적 기업 모델 등 다양한 재원 확보 전략이 병행돼야 제도가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

넷째, 주민의 참여와 신뢰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합돌봄은 ‘행정의 효율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주민 스스로 돌봄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기반 프로그램, 자원봉사 네트워크, 돌봄협동조합 등 민관 협치 구조를 확대해야 한다.

전북은 이미 농촌형·도시형이 공존하는 다양성을 갖춘 지역이다. 이런 특성은 오히려 전국에서 가장 현실적인 통합돌봄 모델 실험지로서의 장점이 된다. 전북이 성공한다면, 이는 단순한 지역 사업을 넘어 전국 돌봄정책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도민의 삶터에서, 익숙한 마을에서,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복지국가의 모습이며, 전북형 통합돌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전북자치도의 이번 선제적 대응이 노년의 불안을 줄이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 글쓴날 : [2025-11-06 14:45:47]

    Copyrights ⓒ 전북타임즈 & jeonbuktimes.bstor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