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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면

김관춘 칼럼 / 논설위원
전북에 사는 청년 대부분은 결혼과 출산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은 해야 한다는 응답이 72%, 자녀는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70%에 달했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조건’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와 주거, 양육의 현실적 장벽이 너무 높아 그 마음이 발목을 잡히고 있다.

전북연구원이 도내 20~44세 청년 1,0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북 청년의 결혼·출산·양육 인식 및 정책 수요 조사’ 결과는 이 같은 청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유로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38.5%)’가 가장 많았지만, 그 뒤를 이은 응답은 ‘주거비용 부담(27.9%)’과 ‘만족할 만한 일자리 부족(26.0%)’이었다. 이는 결혼 상대를 만나도 결심하기 어려운 사회적·경제적 여건이 청년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출산 인식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청년이 70.1%에 달했지만, 미혼 청년 중 38%는 ‘출산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임신·출산·양육의 어려움(21.8%), 양육·교육비 부담(16.1%),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12.7%)이 꼽혔다. 결국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으려는 세대’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세대’로 만들어버린 것은 불안정한 일자리와 높은 주거비, 그리고 돌봄의 공백이다.

전북 청년들은 저출생의 원인으로 ‘양질의 일자리 부족(22.1%)’과 ‘높은 주거비 부담(14.5%)’을 지적하며, 그 대책으로 ‘안정적 일자리 확충(20.4%)’, ‘내 집 마련 지원(18.7%)’, ‘일·양육 병행 지원(15.7%)’을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지원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보장해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펼쳐온 출산장려금이나 결혼지원금 중심의 단편적 정책으로는 저출생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전북연구원은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청년의 결혼 접근성 제고 및 관계 형성 지원 ▲안정적 일자리와 주거 기반 마련 ▲양육 및 돌봄 지원 확대와 일·가정 양립 환경 조성 ▲생애주기별 생식건강 및 임신·출산 지원체계 강화 ▲성평등한 양육 환경 조성과 다양한 가족형태 수용 등 5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출산율’이라는 숫자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삶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제 저출생 문제는 단순한 인구정책이 아니라 청년정책, 노동정책, 주거정책, 그리고 지역정책의 통합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전북의 경우, 수도권과의 격차 속에서 청년 인구 유출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머물고 싶은 지역’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청년주택 확충, 보육 인프라 확장 등 지역 특성에 맞춘 맞춤형 종합대책이 절실하다.

특히 일자리 문제는 청년 결혼·출산의 가장 근본적인 열쇠다. 전북의 산업구조는 여전히 제조·농식품 중심으로, 청년층이 선호하는 고임금·고숙련 일자리가 부족하다. 청년들이 떠나는 이유가 명확하다면, 그에 맞는 산업정책으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신산업 육성과 원격근무 기반 확충, 청년창업 지원 확대 등으로 ‘지역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 문제 또한 결혼과 출산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전북은 수도권에 비해 집값이 낮다고 하지만, 청년들의 체감은 다르다.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현실에서 전세보증금 마련조차 버거운 청년에게 ‘내 집 마련’은 먼 이야기다. 전북도는 청년 임대주택 공급과 더불어 지역 맞춤형 전·월세 지원, 신혼부부 전용 공공주택 확대 등 실질적인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이 제도상 보장되어 있어도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에겐 여전히 먼 이야기다. 돌봄 공백을 메워주는 공공 보육시설 확충, 유연근무제 확대, 남성의 육아참여 지원이 병행될 때 비로소 청년 세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청년층이 결혼과 출산을 ‘의무’나 ‘국가 요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자 삶의 질의 문제로 인식된다. 따라서 “왜 결혼하지 않는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를 묻기보다 “어떤 조건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 지방정부는 출산율 수치를 높이려는 단기적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이 결혼을 꿈꾸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진짜 저출생 해법이다. 결혼은 개인의 일처럼 보이지만, 그 결정의 배경에는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환경이 있다.

청년이 “결혼하고 싶지만 못 한다”고 말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지역의 미래 또한 함께 늙어갈 수밖에 없다. 청년층은 결혼·출산을 개인의 선택과 삶의 질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왜 하지 않는가’가 아닌 ‘어떤 조건이면 할 수 있는가’를 드러냈다. 따라서 정책 설계 초기부터 결혼과 출산 및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전북의 청년정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다. 청년이 떠나지 않고, 머물며, 사랑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전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출생 극복의 출발점이다.
  • 글쓴날 : [2025-11-07 17: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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