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전환점이 있다. 누가 필자에게 인생 전환점을 묻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어 미국에서 석·박사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기회와 더불어, 전북대 교수로 근무하던 2002년 일본 과학재단 초청 교수에 선발되어 동경대 의대에서 연구할 기회가 있었던 것을 꼽을 것이다. 2000초 IMF 외환위기로 신음하고 있던 우리나라와 다르게 당시 일본은 찬란한 황금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일본이 생산해 낸 자동차, 전자, 반도체, 이차전지 등과 같은 첨단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면서 일본 사람의 자부심은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 무렵 일본의 1인당 GDP 규모는 세계 최고이었었고, 국가 GDP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었다. 산업기술도 일본은 미국을 추월해서 일본 기업은 미국 기업을 압도하고 있었다. 과학기술 또한 마찬가지여서 일본은 수많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이미 추월해 버렸었다. 그래서 그 무렵 수많은 미래학자는 이구동성으로 21세기는 일본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당시 동경대 의대에 구비된 최첨단 연구 장비와 설비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도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다. 우람찬 나무가 고풍스러운 건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동경대 캠퍼스에 압도되었던 필자는 실험실을 구경하면서 각종 최첨단 연구 장비가 완벽하게 구비된 연구 환경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동경의대에서 필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학유전학 대가인 이노우에 교수와 서로 통하는 면이 많아 매우 가깝게 지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우에노 술집에서 여러 이야기로 수많은 밤을 새하얗게 새어가곤 했었다. 당시 일본의 국가경쟁력과 대학의 연구 환경에 압도된 필자는 이노우에 교수에게 일본은 정말 대단한 나라라고 감탄조로 말한 적이 있었다. 필자의 말에 이노우에 교수는 홍 교수 자네는 일본을 잘 몰라서 일본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일본은 희망이 없는 나라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노우에 교수의 말에 필자는 처음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의아하였지만, 깊은 대화를 이어갈수록 이노우에 교수의 깊은 고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1868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짧은 기간에 전근대 국가에서 세계 주요 열강으로 도약하였다. 메이지 유신의 주도 세력인 사쓰마번과 조슈번 사무라이들은 사심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한 자기희생과 더불어 서구의 과학기술, 사회제도, 법률 체계 등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분석하여, 당시 일본에 맞는 최선의 국가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부가 아닌 내부의 자각에 의해 후진적 국가에서 세계열강으로 갑자기 국가가 도약한 경우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유일하여, 메이지 유신은 세계 수많은 역사학자를 포함한 인문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사쓰마번과 조슈번 사무라이들이 닦아 놓은 메이지 유신 덕분에 일본은 순식간에 과학기술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1세기 컴퓨터가 혁명적으로 발전하면서 세계는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새로운 혁신이 시작되었다. 급변하는 사회 경제적 환경을 국가 발전의 기회로 삼은 국가도 있었지만, 과거의 영광에만 도취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남긴 환영의 덫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다가 21세기에 들어 국가 전체가 추락해 버렸다.
그래도 일본은 한때나마 세계 최고의 위치에 도달한 다음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정상은커녕 겨우 선진국 문턱을 살짝 구경하다가 벌써 추락하기 시작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추락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빨라 현재 우리는 국가 소멸까지 걱정하고 있다. 특히 전북은 대한민국 타지역에 대해 사돈 남 말할 처지가 못 된다. 중앙정부에서 전북의 발전에 쓰라고 배정한 연구개발비를 측근 중심 개판으로만 집행하여 전북 발전에 재를 뿌리는 것도 모자라, 대마초 사업이라는 황당무계한 사업에 조 단위의 거금을 투자하고, 음주운전 전과 3회를 포함해 전과 5범인 사람을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요 기관장에 과감히 발령 내버리는 김관영 같은 사람이 도지사로 있는 현실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다. 오늘 세계인들은 후지산의 이끼 낀 타타미 바위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전북인들에 끌끌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