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드러난 출연기관의 이중예산 문제는 제도 운영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문제다. 전북도가 매년 막대한 도비를 투입해 운영하는 출연기관이 정작 그 내부에서 수행하는 업무에 별도의 민간위탁금을 또다시 편성해 사용했다는 지적은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미 출연금으로 유지되는 기관에 추가 위탁금을 얹어 예산을 이중으로 사용하는 것은 행정의 투명성을 훼손하고 결국 도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번 문제를 제기한 이수진 도의원에 따르면 전북경제통상진흥원,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 등 최소 3개 기관에서 이러한 중복 편성이 실제로 확인됐다. 특히 전북경제통상진흥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기관은 ‘전북 사회적경제 혁신타운 운영’ 사무를 위탁받아 12억의 위탁금을 받고 있으면서 같은 해 출연금만도 110억이 넘게 책정됐다.
이처럼 운영비와 사업비가 출연금과 위탁금이라는 두 갈래로 중복 편성될 경우, 실제 어떤 비용이 어디에 쓰였는지조차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예산의 흐름이 불투명해지고 그만큼 관리·감독 사각지대도 커질 수밖에 없다.
본질적인 문제는 출연기관의 사무 성격에 대한 잘못된 분류에서 비롯된다. 출연기관은 법적으로 ‘공공위탁’에 기반한 기관이다. 즉, 도가 출연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내부에서 수행되는 사무는 민간위탁이 아니라 도의 고유 사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공공위탁’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일부 기관이 시설 운영 수준의 사업을 ‘민간위탁’으로 둔갑시켜 별도 예산을 편성한 것은 제도에 대한 오해든, 고의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우려는 이러한 사례가 일부 기관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이 의원의 지적처럼 시설 운영·관리 수준의 단순 사무조차 민간위탁으로 포장돼 예산을 이중으로 받는 구조가 이미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면, 이는 조직적 도덕적 해이로 볼 수밖에 없다. 출연기관들은 도 예산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만큼 더 높은 책임성과 투명성이 요구된다.
전북도 기획조정실이 전수조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단순한 현황 파악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연금과 위탁금의 편성 기준을 통합적으로 재정비하고, 유사·중복 사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관리 체계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사안은 도의회의 지적이 없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북도의 내부 감시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출연기관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진 전북도는 더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출연기관이 스스로 책임성을 회복하도록 제도를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예산 편성 권한을 재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산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지방행정의 기본이다. 도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전북도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예산 집행 구조를 근본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감사 지적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전북도 행정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