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자치도가 국내 최초로 ‘글로벌 메가샌드박스 1호 헴프산업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소식은 단순한 산업 기반 조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메가샌드박스 제도가 헴프산업에 최초 적용되는 것이자, 전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새만금이 규제혁신의 시험장이자 바이오 신소재 산업의 전략적 플랫폼으로 올라서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광활한 배후지를 갖춘 새만금이 ‘재배–실증–가공–수출’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생태계 구축의 실험무대가 되는 것은 산업 구조 전환을 모색하는 전북경제에도 중대한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협약에는 전북자치도, 새만금개발청, 전북대·원광대 등 지역대학, 그리고 ㈜유한건강생활·㈜버던트테크놀로지·상상텃밭㈜ 등 유력 바이오기업이 참여했다. 이 구성만 봐도 단순한 산업단지 개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규제혁신·기술개발·연구·인력 양성·글로벌 시장 진입을 포괄하는 전방위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헴프산업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의료용·산업용·바이오소재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산업용 헴프를 기반으로 의약품, 기능성 소재, 플라스틱 대체 바이오폴리머, 섬유, 식품 등 미래 산업을 넓히고 있으며, 일본 또한 규제 개편을 추진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헴프가 대마류로 묶여 있는 법체계 탓에 산업화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단발적 규제 특례나 기업 단위 실증 수준으로는 산업화 전환이 불가능하다. 메가샌드박스가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메가샌드박스는 기존의 규제자유특구가 개별 기업·개별 사업 중심의 ‘한시적 실증 허용’에 머물렀던 한계를 뛰어넘어, 광역 단위에서 산업 전체를 포괄하는 규제특례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다.
다시 말해, “규제를 풀고 실증을 해본 다음 산업을 허용할지 말지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산업생태계 조성이라는 목적을 중심에 두고 규제체계를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양산, 실증, 연구, 교육, 제조, 임상, 수출이 폐쇄적 규제 틀에 갇히지 않고 연결될 수 있어야 헴프산업의 실질적 성장도 가능해진다.
전북도가 이번 협약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협력 분야—①산업클러스터 조성 ②규제특례 발굴 및 법제화 검토 ③재배·기술개발·인력양성·GMP 구축 ④투자유치·수출시장 개척 ⑤지역 상생과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 구축—은 결국 헴프산업을 단순한 재배·가공 사업이 아닌 국가전략 바이오소재 산업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청사진이다.
특히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기반 의약·건기식 제조 인프라 구축은 산업 고도화의 핵심이다. 해외기업과 협업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의약품 수준의 품질 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학이 참여하는 연구·인력양성 체계는 산업 지속성의 기반이 된다. 고급 연구직·기술직 중심의 바이오 전문인력 창출은 전북의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새만금은 지리적·환경적 요건에서도 탁월한 강점을 갖는다. 수출지향형 배후지, 광활한 농생명 생산지, 자유무역지역, 신항만과 공항 개발 등은 헴프 전주기 산업이 갖춰야 할 요건과 정확히 맞물린다. 재배–실증–가공–수출이 모두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구조는 국내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던 공간 기반 산업 통합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남는다. 규제혁신과 실증 기반은 ‘필요조건’일 뿐이며, 진정한 산업화를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에 맞춘 과학적 R&D, 임상 데이터 확보, 안전성·효능 검증체계, 시장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헴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 대마와 헴프의 법적·과학적 차이를 명확히 하고, 산업용 헴프가 미래 바이오경제의 핵심 소재임을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MOU 체결은 출발일 뿐이다. 메가샌드박스는 제도적 설계와 법제화, 중앙부처 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앞으로 넘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북이 선제적으로 이 길을 선택한 것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미 전북은 ‘바이오-그린 전환’이라는 새로운 성장 경로를 모색해 왔다. 헴프 기반 바이오산업은 이 흐름을 가속할 수 있는 미래 전략 산업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와 일관성이다. 규제혁신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고, 기업 유치와 실증 기반도 빠르게 구축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국내 기업에게는 장기적인 사업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와 지방정부, 대학, 기업이 참여하는 공동 협의체는 형식적 기구가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 중심의 기구가 되어야 한다.
새만금이 국내 첫 ‘헴프산업 메가샌드박스 특구’가 된다는 것은 전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산업 전환이 필요한 대한민국 전체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실험이다. 헴프 기반 바이오소재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으며, 지금 이 분야의 주도권을 잡는 국가가 미래 바이오경제의 리더가 될 것이다.
전북은 지금 그 첫 문을 열었다. 이제 새만금이 규제혁신–기술개발–수출기반이 완벽히 갖춰진 국가대표 헴프산업클러스터로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이 실험이 한국 미래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