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사설] 촘촘한 사회안전망, 전북이 만든 새로운 복지 표준

전북자치도가 최근 위기가구 1만3천여명을 전수 조사해 346명의 위기가구를 새롭게 발굴하고, 698건의 지원을 연계한 것은 지방정부 복지행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다.

특히 지난 5월 익산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기초생활보장급여 중지자 1만3,190명을 일일이 확인한 조치는 그동안 ‘신청주의’에 갇혀 놓치고 있었던 취약계층을 체계적으로 찾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복지정책의 본령은 ‘기다리는 행정’이 아니라 ‘찾아가는 공공성’임을 전북이 실천으로 증명했다.

이번 조사는 도와 14개 시군이 한 달 동안 유선 상담과 방문조사를 통해 실제 생활 환경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전체의 2.6%에 해당하는 346가구가 더 이상 위험에 방치되지 않도록 도왔다. 발굴 대상은 곧바로 공적급여 508건, 민간자원 연계 190건 등 총 698건의 맞춤형 지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제도적 기반의 개편이다. 전북도는 조사 과정에서 긴급복지 제도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현실의 위기가구 상당수가 문턱에서 탈락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1인가구 금융재산 기준 8백40여만원은 당장의 위기 상황을 증명하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잣대였다.

이에 도는 복지부와 협의를 거쳐 기준을 1천39만2천원까지 상향하고 소득 기준 역시 기준중위소득 85% 이하 전체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제도 개선 전 7개월 동안 고작 3건에 불과했던 전북형 긴급복지 지원이 개선 이후 3개월 만에 48건으로 16배나 증가했다. 제도는 현장을 반영할 때 비로소 기능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값진 사례다.

전북의 이번 노력은 ‘위기 가구는 스스로 신청하기 어렵다’는 명확한 현실 인식 위에서 출발했다. 생계 위기, 건강 악화, 가족 해체 등 복합적 문제에 놓인 이들은 정보 접근성 부족, 심리적 위축, 제도 불신 등으로 지원 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행정의 역할은 단순 전달자가 아니라 위기 신호를 먼저 감지하고 개입하는 ‘능동적 보호체계’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성과를 제도 개선의 종착점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복지 사각지대는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새롭게 생겨난다. 고령화, 1인가구 증가, 중장년 고립, 돌봄공백 등 다양한 취약 요소가 겹쳐지는 만큼 복지행정도 고도화와 전문화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현장 공무원의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 문제도 보완해야 할 과제다.

전북이 올해를 ‘복지 사각지대 해소의 원년’이라 선언한 것은 실천을 전제한 약속이어야 한다. 위기가구 발굴 체계를 정례화하고, 데이터 기반 행정을 강화하며, 민·관 협력을 촘촘히 연결하는 일은 도민의 생명과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제 전북이 만들 다음 단계는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행정이 먼저 움직이고,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전북형 복지 모델’이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 글쓴날 : [2025-11-21 13:56:05]

    Copyrights ⓒ 전북타임즈 & jeonbuktimes.bstor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