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힘입어 당시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 반대’라는 당론을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이들은 선거에 참여하는 약 15% 정도의 스윙 보터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것입니다. 결국 국민의힘의 위와 같은 잘못된 전략은 양당체제-대통령제의 정권 교체가 스윙보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무지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다시 살피면 비상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 6일 기준, 보수층 적극 지지자 32% 중 10%의 극우파를 제외한 22%는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그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습니다. 즉 이들은 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이들이 돌아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동료 변호사의 에피소드가 적절한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제 지인은 전남 출신이고 아내는 경북 안동 출신인데, 장인의 직업은 의사라고 합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약 두 달이 채 못되었던 2025년 1월 말경, 설날이라 모두 모인 자리에서 TV 뉴스를 보면서 장인이 “윤통은 됐고, 니들은 뭐 잘했나?”라고 퉁명스럽게 신경질을 내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니들’이란 민주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위헌적인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민주당은 싫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민주당에 대한 적대감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보수층 지지자들이 다시 연합하면서, 종전의 합리적 판단을 철회하고 극우파가 보수층 전체를 과대대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극우파의 과대대표는 우리의 정치가 적대적으로 진영화 되어 있다는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극우파는 이러한 적대성을 가장 강력하게 강조하는 방법으로 보수층 내에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적대성을 계속 증폭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국민의힘 당은 극우파를 ‘강성 지지층’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극우파는 그냥 강성층이 아니고 합리적인 보수층과 질적으로 다른 집단입니다.
그들은 헌법과 법률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상대당을 적대하기 위해서라면 폭력의 행사도 불사하며, 객관적 진실도 왜곡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 같은 극우파로부터 합리적인 보수층을 분리해 내려면, 적대적 정치와 진영의 대립을 해소해야 합니다.
그래야 극우파의 보수층 과대 대표를 해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대적 정치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적대적 진영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위 안동 출신 의사 장인의 사례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는 윤석열의 계엄이 잘못되었고, 그의 정치도 무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민주당을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 민주당에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가 제3당의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면, 굳이 “윤통은 됐고, 니들은 뭐 잘했나?”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다시 국민의힘에게 투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21대 대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당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준석만 모르고 있었고,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보수층은 민주당에 대항해서 좀 더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김문수 후보에게 투표를 한 것이며, 이러한 행위를 이른바 ‘전략적 투표’라고 부릅니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으로 한 사람만을 뽑기 때문에 전략적 투표 행위에 지배됩니다.
그런데 적대적 진영정치는 근원적으로 양당 체제로부터 비롯되며, 양당 체제는 소선거구-다수대표제 선거제도로 지탱됩니다. 왜냐하면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국회의원 선거도 그 선거구에서 한 명만 뽑기 때문에, 똑같이 전략적 투표에 지배됩니다. 따라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면 제3당과 제4당을 육성할 수 있으며, 합리적 보수층을 극우파로부터 분리하여 극우파를 소수당으로 고립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를 강화해서 의회를 다당체제로 만들더라도, 대통령제는 다시 의회를 양당 체제로 수렴시킵니다.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는 제1당과 제2당만이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케네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던 1960년 미연방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 공화당 후보 외에 여러 정당의 후보가 있었지만, 현재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만이 존재합니다. 대통령제가 적대적 양당 체제를 구축한다는 사실은 위와 같은 미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적대적 진영정치를 없앨 수 있을까요? 정치인들에게 화해와 타협을 주문한다고 해서 적대적 진영정치를 해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극단적 대립 정치를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것은 바로 양당 체제-대통령제입니다.
일정한 주기로 지배권을 교환하여 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시스템이 양당 체제-대통령제입니다. 이러한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다당체제의 의회를 만들어야만 적대적 진영정치를 끝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민주당의 카운터파트로 합리적인 보수당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면, 두 번의 민주당 대통령 이후에 우리는 2035년에 ‘극우 대통령 시대’를 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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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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