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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정국 1년, 처벌 0명 – 침묵의 구조 깨야 한다

김관춘 칼럼
12·3 계엄선포 이후 1년. 국민은 아직도 묻고 있다. 왜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는가. 왜 이처럼 중대한 사건이 일반 형사사건보다 더디게 흘러가고 있는가. 국가는 존립을 위협받았고, 헌정질서는 붕괴 직전까지 갔다. 그럼에도 현재의 사법 프로세스는 헌법 파괴 범죄가 아닌 잔여 사건을 처리하는 듯한 태도로 읽힌다.

그 사이 혐의 대상자들은 법정에서 변명과 책임 전가만 반복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국민의 분노는 옅어지고 사건의 중대성은 희미해진다. 이대로라면 정치와 권력은 살아남고, 법과 민주주의만 죽는다. 이 상황의 핵심은 사법부에 대한 ‘절차 신뢰의 붕괴’다.

재판 과정 역시 지지부진하다. 핵심 가담자에 대한 영장 기각이 반복되고, 공범 혐의자를 둘러싼 법적 판단은 나아가지 못한다. 사법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표현을 반복하지만 국민이 듣는 그것은 지연, 그리고 회피의 다른 말이다. 그사이 가장 힘을 얻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이다.

시간은 증언을 희미하게 만든다. 기억을 닳게 만든다. 분노를 무디게 만들고, 사건을 지난 역사로 밀어낸다. 이 ‘느려터짐’ 속에서 혐의를 받는 인물들은 점차 ‘억울한 피해자’의 서사까지 주장할 여지를 확보한다. 공방이 길어질수록 국민감정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민주주의 질서를 뒤흔든 사태의 충격 또한 흐려진다. 진실은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법 체계는 시간을 들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원칙은 세 가지다. 무작위 배당 원칙, 공정한 심리, 재판 지연 없는 신속 처리 원칙이다. 그러나 최초 사건 배당은 이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내란 혐의는 본질상 국가안보·공안·부패 범죄 전담재판부에서 다뤄야 할 성질이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이를 식품·보건을 전담하는 재판부에 배당했다. 이후 ‘관련사건’이라는 명목으로 핵심 피고들까지 같은 방으로 연결했다. 사법부는 지금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은 반문한다. 이미 깨진 원칙을 왜 지금 와서 이유로 드는가. 특별재판부 설치가 원칙 위반이라면, 지금의 배당은 원칙에 부합하는가? 즉, 사법부는 원칙을 근거로 반대하지만 현행 배당 방식이야말로 원칙 위반이라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국민 불신은 증폭된다. 믿음은 설명 위에 서지만, 지금 법원은 질문을 외면하고 있다.

내란죄는 헌정질서 파괴행위이며, 형법상 가장 중대한 국사범 범주에 들어간다. 형법 제87조(내란) 및 제90조(미수범 처벌), 국가보안법, 헌법 제84조 등에 따르면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도 이러한 범죄에 대해 불소추 특권을 갖지 않는다.

그만큼 무거운 범죄다. 그럼에도 사법부의 태도는 위험할 정도로 신중을 넘어 소극적이다. 이 상황에서 내란전담 특별재판부는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복구 장치다. 법적 근거는 더 명확하다. 국회는 헌법 76조·110조에 의거, 사법체계를 설계할 권한이 있다. 내란·외환죄의 특별 심리 절차를 법률로 확립할 수 있다. 위헌심판 제청 시 재판 정지 예외 조항을 신설할 수 있다.

다수의 헌법학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란·외환 등 헌정질서 파괴범은 일반 형사범과 동일 절차로 처리하는 것은 ‘법적 중대성의 불균형’을 발생시키며, 특별 절차와 전담재판부 설치는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지금의 사법 체계는 이미 비틀려 있다. 그 뒤틀린 틀 안에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다. 그럼으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이미 상당 부분 소진되었다.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무거운 증적(證跡)처럼 쌓인 지금, 사법부가 정상적으로 재판을 수행한다 해도 판결은 결과보다 그 과정을 국민에게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국민은 판결뿐 아니라 절차의 투명성, 배당의 공정성, 심리의 독립성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국민은 사법부가 스스로 원칙을 지키길 기다렸지만, 1년은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기다림은 해법이 아니라 손실이었다.

일각에서는 특별재판부가 설치되면 헌법소원·위헌심사 제청으로 인해 재판이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법 개정으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 내란·외환과 같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범죄는 형사불소추 특권조차 배제되는 헌법상 중범죄다. 그렇다면 재판 정지 예외 규정 또한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국회가 의지만 가진다면 제도적 장벽은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법이 아니라 의지다.

입법부는 더 이상 방관자가 되어선 안 된다.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국회가 헌정질서의 파수꾼으로 나서야 한다. 특별재판부 설치는 사법부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안전판을 세우는 행위다.
그것은 국민이 사법을 믿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안전장치다. 더 늦기 전에, 민주주의가 기억을 잃기 전에, 설치해야 한다. 지금 선택해야 한다. 사법의 명예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방관 속에 민주주의를 소모품처럼 소진할 것인가.

역사는 냉정하다. 제도는 작동하든가, 무너진다. 지금 국회와 사법부가 내릴 선택은 이 나라의 헌정시스템이 향후 30년을 버틸 수 있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내란전담 특별재판부는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이며, 더 늦기 전에 세워야 할 방책이다.
  • 글쓴날 : [2025-11-28 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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