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다…폐지가 바로 '내란 종식’(1)

독재 정부 치하에서는 민주개혁 진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반대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막상 민주정부 시기에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민주개혁 진영 내에서 “민주정부가 들어섰는데, 국가보안법이 있다 한들 큰 문제가 되겠나?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되지 않았나?”라고 말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회피하거나 그것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겨난다. 이것은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을 때 당시의 여당 정치인들이나 민주개혁 진영 사람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했던 뼈아픈 경험만 떠올려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민주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는 주장은 한국인에게 미치는 국가보안법의 심각한 악영향을 간과하는 현실 인식의 오류에서 기인하는 잘못된 주장이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된 것이 아니라 내면화되었다. 모든 장소에서 흡연이 가능했던 사회에서 어느 날 실내에서의 흡연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에 사람들은 그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실내 흡연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은 실내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지조차 모를 테지만, 실내에서 흡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는 실내 흡연 금지법이 여전히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은 그 법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문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 내재화되기 때문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했듯이 가시적인 외적 처벌보다는 그것의 내면화 – 프로이트주의에서는 이를 초자아라고 정의한다 - 가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효과를 미치며, 정신건강에도 더 해롭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사고와 말 그리고 행동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내면화, 내재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재명 정부가 탄생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국가보안법의 위력은 여전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정훈 대표에 대한 실형 선고와 구속이다. 11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윤영수 재판장)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제8조(회합·통신 등)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정훈 대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했다.

통상적으로 국가보안법 재판의 경우 재판부가 피고인과 변호인의 합리적 반론은 무시하는 반면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은 아무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이 조작하고 검찰이 기소한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엉터리 판결문을 작성했다.

예를 들면 판결문은 검찰 측 증인이 법정에 출석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는데도, 소위 ‘북한 공작원’의 존재에 대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증인이 진술했던 내용을 인정하는 등 공판중심주의를 위배했다. 또한 피고인이 받았다는 소위 ‘북한의 지령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서도, 그것이 정황상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1심 판사는 이정훈 대표에게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 법정구속을 선고한 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정훈 대표는 다음과 같이 외침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이정훈 대표에 대한 국가보안법 재판에 대해 2025년 11월 13일, 진보단체인 ‘자주연합’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며 사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 재판은 국가보안법 자체의 위헌성과 부당성은 물론, 현행 법률에 비추어 보더라도 정당성이 전혀 없는 재판이다. (…) ①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가 통째로 부정되었다. 사법부가 국가보안법 공안 논리의 포로가 되어 국정원과 공안검찰의 도구로, 공안 세력의 공동정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의 헌법 제3조와 제4조, 그리고 국가보안법은 북을 적대하는 법이다. 2024년 이후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한 북은 한국이 최소한 북을 적대하는 법인 헌법 제3조와 제4조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만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을 적대하는 법을 그대로 놔두는 한 한국 정부를 절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북은 한국에 헌법 제3조와 제4조, 국가보안법이 존재함에도 한국과 대화를 했으며 교류나 협력도 했다. 당시에는 북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특수관계, 즉 민족 관계 혹은 동족 관계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국을 통일의 상대이자 동족으로 보았기 때문에 북을 적대하는 법의 존재를 참아주었던 것이다. <계속>


*  *  *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