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자치도가 도의회로부터 연일 뼈아픈 질책을 받고 있다.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에서이지만, 실상은 올해 집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집중적으로 지적되며 행정 전반의 허술함을 드러내고 있다. 예산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이자, 도민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이다. 그 기본이 무너진다면 행정은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
도의회 경제산업건설위원회가 미래첨단산업국을 상대로 진행한 내년도 본예산안 심사는 행정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함을 보여줬다. 미래산업의 핵심 분야에서조차 예산의 타당성과 성과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대중 위원장은 탄소산업 국제기술교류 지원사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탄소산업발전위원회에 10년 넘게 예산을 지원하고, 박람회 참가 비용에만 1억6천만 원을 투입했음에도 가시적 성과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동구 부위원장이 지적한 스마트 제조혁신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사업 분야에서 기업 간 성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구조라면, 사업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준과 성과 지표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지원사업은 정책효과가 균등하고 공정하게 나타나야 한다.
예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이재 의원은 국가품질혁신경진대회 관련 용역비와 시설사용비의 세부 산출이 불투명하다고 꼬집었다. 세부 내역조차 공개되지 않는 예산이라면 부실 집행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사업운영비의 과다 편성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나인권 의원이 지적한 중소기업 연구원 주거비 지원사업은 규모에 비해 운영비가 과도하게 책정돼 혈세 낭비 우려를 낳았다. 이는 사업 목적과 운영 구조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행정의 실책이다.
성과가 미흡한 대형사업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서난이 의원은 ‘지역의 미래를 여는 과학기술 프로젝트’가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성과를 만드는 것은 결국 치밀한 계획과 냉정한 평가다.
홍보비 과다 책정 문제도 또다시 반복됐다. 이병도 의원은 성장동력산업 홍보 관련 예산이 구체적 근거 없이 편성됐다고 지적했다. 홍보가 필요하다면 목적, 내용, 수단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산출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사업에서 3년 가까이 중복 예산을 받은 사례다. 임종명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이런 구조는 결국 특정 단체나 기관에 대한 보조금 특혜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전북 행정은 지금 근본적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미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원대하나, 예산 집행의 현실은 아직도 탁상행정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은 반드시 성과 중심, 투명성 강화, 중복·낭비 제거, 관리·감독 체계 개편이라는 원칙 위에 다시 설계돼야 한다.
도의회의 비판은 단순한 꾸지람이 아니라, 전북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경고음이다. 집행부는 이를 변명으로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내년에는 더 나은 행정으로 도민이 체감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전북 행정이 책임지고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