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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동네서점으로 시민의 문화 지도를 그리다


지역의 문화 기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책을 사고, 읽고, 이야기하는 일상이 쌓일 때 지역문화는 단단해진다. 전주시는 일찌감치 동네서점을 단순한 판매시설이 아닌 문화 인프라로 바라보고, 서점·도서관·시민이 함께 움직이는 생활권 독서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이 바탕엔 ‘책은 공공재’라는 명확한 철학이 깔려 있다. 시는 2020년부터 서점을 문화 인프라로 제도화하고, 도서관과 서점을 연결하는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동네서점이 자생력 있는 문화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왔다. 서점이 지역경제와 문화생태계를 함께 이끄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는 전주의 사례는, 지방시대의 문화행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 편집자 주


▲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 전주는 달랐다
전국 곳곳에서 동네서점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출판시장 침체와 온라인 중심 소비 확산이 맞물리며, 지역의 독립서점들은 생존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주시의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감소세를 보이는 전국적 추세와 달리 전주는 동네서점 수가 오히려 증가했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76개였던 전주시 지역서점은 2025년 현재 95개로 25% 늘어나며,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동네서점이 없어지는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출판‧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 강화를 주문했다. 동네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상점이 아닌, 지역문화 생태계의 핵심이란 인식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 전주시는 이 같은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고 ‘지역문화의 중심’인 동네서점 보존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동네서점의 수익 개선이 곧 서점 서비스 역량 강화,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전주의 동네서점은 이미 시민과 다양한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서점마다 인문, 그림책, 문학 등 각기 개성 있는 개별 큐레이션을 마련해 시민의 독서 선택권을 넓혀왔다. 책방지기가 직접 참여하는 청소년 독서 멘토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독서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서점은 지역 교육·문화 활동의 거점으로 정착했다. 주민이 만나고 소통하며 문화를 경험하는 생활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주의 동네서점은 지역 출판과 신진 작가 발굴에도 기여하고 있다. 전국 유일의 ‘동네책방문학상’을 운영하며 작가와 독자의 접점을 넓히고, 지역 창작물이 시민에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동네서점은 지역문화 향유의 창구이자, 창작 생태계를 잇는 풀뿌리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점은 도시의 문화 접근성을 결정하고, 시민의 일상에서 책과 사람을 연결한다. 서점 감소가 문화 격차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아래, 전주시는 서점 중심의 문화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시민이 책을 통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지역이 스스로의 문화적 자원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 동네서점과 도서관이 함께 엮어낸 책의 길
전주시는 책을 시민 모두가 접근하고 향유해야 할 공공재로 바라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동네서점이 지역 문화정책의 실행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 2020년부터 ‘전주책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서점 인증제를 운영하는 등 서점이 시민의 일상 속 문화공간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지역서점 인증제는 일정 규모 이상으로 방문형 매장을 운영하고, 서적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서점에 대해 전주시가 직접 인증하는 제도다. 인증 기준에는 도서 진열 비율, 영업 형태 등 실제 독서문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요건이 포함된다.

동네서점들의 활동은 전주시 도서관과의 협력 속에서 더욱 풍성해졌다. 시는 동네서점이 자생력 있는 문화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서관과 연결하는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시와 전주책방 네트워크가 함께 한 동네책방 ‘북페스티벌’은 지역 작가와의 강연 및 특화 프로그램, 부스체험,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동네책방 14개소가 참여해 62회 개최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작가 초청 북토크, 체험 프로그램, 낭독공연 등으로 이뤄진 ‘전주책방 활성화 프로그램’이 열려, 동네책방 10개소가 참여해 23회 진행됐다.

시는 책방 및 전주시 서점조합 간담회 등을 개최해 현장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고 전주독서대전,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등 주요 독서문화행사에서 북마켓을 운영하며 서점과 독자를 연결했다.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책기둥도서관은 서점과 연계한 북큐레이션, 협력 강연 등을 통해 시민이 도서관에서 책을 만나는 경험이 서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특히 완산도서관이 운영하는 ‘가치서점’ 은 서점의 특성을 반영한 전시와 강연을 통해 지역 서점의 고유한 문화 역량을 시민에게 전달하는 상생협력의 사례로 평가된다.

시는 도서관이라는 공공 문화 인프라를 중심축으로 삼고, 서점을 매개로 독서문화가 시민 생활 반경 내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이는 시민들의 문화 접근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지역서점이 지속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 ‘책쿵20’으로 완성된 독서생태계
전주시 동네서점 활성화의 핵심 동력은 지난 2021년 시작된 책사랑포인트 제도 ‘책쿵20’이다. 이는 전국 최초로 시립도서관 대출 실적과 서점 도서 구매를 연계한 정책이다. 시민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면 포인트가 적립되고 동네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할 때 정가의 20% 이상을 할인받아, 시민의 독서활동 자체가 곧 지역서점의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온라인 및 대형서점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려 쇠퇴하던 동네서점과 도서관의 상생 협력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되는 정책이다.

성과는 수치로 뚜렷이 나타났다. 지난 4년 동안 3만 5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약 17억 9천5백만의 포인트가 적립됐다. 이는 53만여 권의 도서 구매로 이어졌으며, 지역서점 매출은 약 89억 7천5백만 원 증가했다. 일일 평균 377권의 도서 구매가 이뤄진 것이다. 또한 참여 서점은 같은 기간 28개소에서 53개소로 확대되며 ‘책쿵20’이 지역서점 생태계 확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는 단순히 매출 증가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전주의 동네서점은 시민이 책을 매개로 참여하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시민이 서점에서 책을 사고, 서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 경험이 다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독서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이는 동네서점의 자생력을 강화하려는 정부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전주시는 이를 기반으로 향후 서점-도서관 연계 프로그램 확대, 로컬북페어 및 서점 공동 마케팅 지원, 독립출판 및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활성화 등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국이 서점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전주 동네서점의 성장은 지역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시민이 일상에서 책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나는 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장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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