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다시 송전망 갈등의 소용돌이 앞에 섰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산업 전력 수요 급증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떠안은 채, 지역은 전력 인프라의 약한 고리로 취급돼 왔다.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이 송전탑건설백지화전북대책위원회와 함께 ‘송전망 갈등 해법’을 모색하는 정책토론회를 연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토론회는 보상 방식을 떠나 전력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한층 분명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안 의원이 지적했듯 전북은 국가 재생에너지 공급의 핵심 지역임에도, 그 이익은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송전 부담과 피해만 떠안는 기형적 구조에 놓여 있다.
새만금과 서해안 일대에 대규모 신재생 설비가 들어서지만 생산된 전기는 수도권·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초장거리 송전선만 늘어날 뿐이다. 전북이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는커녕 지속적 갈등의 무대가 되고 있어 안타깝다.
이 구조를 방치한 채 추가 보상이나 임시방편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토론회는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토론회에 참석한 기후에너지환경부 차관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주민 수용성과 민주적 절차 강화를 약속한 것은 정부가 송전망 갈등을 구조적 정책 과제로 다루겠다는 신호다.
무엇보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주목할 제안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2·3단계 지방 이전론이다. 서울대 박상인 교수는 초장거리 송전망 확충으로 인한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규모 전력 소비 산업의 지방 분산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의 입지를 수도권에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이미 대통령도 산업 분산, 지방 균형발전을 주요 국정 기조로 제시한 만큼, 용인 클러스터의 단계적 이전은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토론회가 이재명 대통령의 전북 타운홀 미팅을 앞두고 열렸다는 점도 주목된다. 대통령이 도민과 직접 마주하는 자리에서 송전망 문제는 반드시 핵심 의제로 논의되어야 한다. 전력 인프라는 지역의 삶과 산업의 뿌리를 좌우하는 문제인 만큼, 주민 의견을 기반으로 한 ‘참여형 전력 계획’이 이제는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
안 의원과 발제자들이 토론 이후 대통령실 관계자들과 타운홀 논의 의제를 조율한 것 역시 전북 민심이 국정에 직접 반영될 통로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송전망 갈등은 더 이상 보상 확대나 노선 조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대규모 산업 입지를 분산하고, 지역 내 생산·소비 기반을 확대하는 ‘분산에너지 체계’로의 전환만이 궁극적 해법이다. 지산지소, 즉 전북이 생산한 전력을 전북에서 우선 활용할 수 있고, 산업과 일자리가 함께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안 의원의 약속대로 전북이 구조적 대안을 마련하고 정부와 새로운 전력 체계를 함께 설계해 나간다면, 송전망 갈등은 전북 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중앙과 지역이 국가 에너지 체계 전체를 ‘분산·자립·균형’의 방향으로 재편하는 근본적 개혁이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