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중요 종사자들의 버티기 전략으로 인해 계엄을 둘러싼 일련의 행동계획과, 비상대권에 의한 통치 구상은 아직도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아직 내란이 끝나지 않았다는 불편한 현실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수사와 재판만으로 ‘인지전’ 개념의 쿠데타 본질 밝혀낼 수 있을까? 12·3 내란의 기원과 성격, 그 전모를 추적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거니와, 한국 민주주의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이루어 낸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경과되도록 이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기록물 정리,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주로 사법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 검찰 특별수사본부, 공수처, 국가수사본부의 수사를 바탕으로 출범한 내란특검에 의한 수사가 진행되었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이 있었으며,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내란 우두머리와 중요 가담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사법 과정은 내란 중요 인물들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 국한되기 때문에 12·3 내란에 내포된 정치·사회적인 맥락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2024년의 12·3 내란이 1979년의 12·12사태, 1980년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때와 동일한 군 부대에 의해 실행된 친위쿠데타임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분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12·3 사태는 권력자의 변덕과 충동, 그 권력자를 추종하는 소수의 세력들에 의해 갑자기 벌어진 사건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계엄은 비록 권력자의 비논리적인 충동에 의해 결행되었다 할지라도 계엄의 설계와 실행은 군사 지휘체계라는 관료 기능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 계엄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단계적으로 충족하면서 이루어진 과정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국가의 신경과 동맥을 차단하려던 과거의 방식과 달리, 동원된 무력의 규모를 최소화하고, 여론의 심장부를 정밀타격하는 빠른 기동전을 주축으로 하는 양상으로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대안언론에 의한 여론정치라는 현대적 요인을 고려한 ‘인지전(cognitive warfare)’ 개념으로 재설계되었다.
방첩사령부는 유튜버를 활용한 인지전 조직을 준비했고, 부정선거론을 조장하며 선관위 서버와 여론조사기관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21세기형 디지털 쿠데타는 물리적 권력 장악을 넘어 인지적 권력 장악을 노린 설계였다.
과거와 같이 전국적으로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계엄이 아니라, 일단 선관위의 데이터를 조작하여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 여론을 불러일으키면 “국민 여론은 돌아설 것”이라는 김용현의 계획, 즉 그럴듯한 이야기로 새로운 통치 담론을 사후에 조작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인지전에서 말하는 ‘서사 무기(story weapon)’가 준비되었음을 암시한다. 그 행동 대장이 바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었다. 이 점에서 12·3 내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하이브리드 정치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여론과 알고리즘을 동원한 디지털 전복 내지 폭동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란 특검이 밝혀내지 못하는 계엄의 핵심 몸통이자 본질이다.
내란 행위 자체는 진압되었지만 정치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가는 분열되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기관 외에 국회나 정부 기관 어디에서도 이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하지 않고, 내란 재판의 결과에 따른 수동적인 사후 처리를 마치 ‘내란 종식’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진정한 내란 종식은 내란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와 문화를 혁신하는 데 있다.
12·3 계엄 사태는 단순한 정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21세기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형태의 위기—내부로부터의 제도적 붕괴, 그리고 그것을 막아낸 '시스템의 자가 치유'에 관한 기록이다. 시민사회의 비폭력 저항과 군인들의 양심적 불복종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그러나 진정한 종식은 아직 오지 않았다.
1993년 문민정부의 '하나회 척결'과 '율곡비리 특감'은 과거 12·12, 5·18에 대한 단죄와 군사 권력 해체라는 역사적 과업을 정부가 책임 있게 수행한 사례다. 이재명 정부는 12·3에 대한 자체적인 조사와 역사적 평가를 통해 '법에 의한 지배'와 '문민화된 군대'라는 더 고도화되고 성숙한 민군 관계를 형성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다. 이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다.
12·3 내란의 완전한 종식은 사법적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의 치유,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혁, 그리고 이 사건이 남긴 질문들—민주주의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악의 평범성에 맞서는 선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이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만 가능하다. 2024년 12월 3일의 밤은 끝났지만, 그 밤이 던진 질문은 계속된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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