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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희망고문’ 지적의 무게, 새만금 30년을 돌아보자

이재명 대통령이 새만금개발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던진 ‘새만금 희망고문’ 발언은 30년을 끌어온 국책사업의 현주소를 정면으로 찌른 문제 제기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을 정리하라”는 대통령의 말은 단순한 수사나 속도 조절 주문이 아니다. 장밋빛 청사진과 정치적 구호만 난무한 채 실행력 없는 계획을 반복해 온 새만금 개발의 구조적 한계를 더 이상 지지부진 끌고 가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다.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전북 정치권과 지역사회에서 엇갈린 해석이 쏟아지는 현실 자체가 새만금의 혼란을 상징한다. 전북 정치권은 이를 신속 개발 주문으로 받아들이면서 각자의 청사진을 내놓았고, 정의당 등은 전면 해수유통과 매립 중단을 요구하며 사실상 사업 종식을 주장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기존 새만금 기본계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지적했듯 새만금 계획은 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들이 뒤섞인 ‘누더기’에 가까웠고, 민간투자 의존과 과도한 기대가 사업 지연을 되풀이해 왔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지역사회가 여전히 관할권 분쟁과 정쟁에 매몰돼 있다는 점이다. 새만금이 ‘희망 고문’이 된 이유는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역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30년 동안 매립률은 고작 40%에 그쳤고, 이미 매립된 산업 용지조차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농생명용지는 담수화 계획 무산 이후에도 대안 없이 방치돼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개발이냐, 중단이냐의 이분법만 반복하는 것은 전북 도민들에게 또 다른 희망 고문일 뿐이다.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전환’이다.

이런 가운데 김관영 지사가 보다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선매립·선기반시설 없는 민자 유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 새만금 전역을 메가샌드박스 특구로 묶어 규제·재정·인프라를 결합한 정책 패키지를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비타당성조사 역시 국정과제의 속도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으로 적용하고, 광역 기반시설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생태 보존이냐, 첨단 산업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새만금은 이제 무엇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선택과 결단의 문제다. 대통령의 ‘희망 고문’ 발언은 바로 그 선택을 더 미룰 수 없다는 경고다. 국가가 책임지는 명확한 로드맵, 실행가능한 산업 전략, 그리고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함께 제시될 때 새만금은 비로소 30년의 표류를 끝낼 수 있다.

이제 선택지는 분명하다. 새만금을 정치적 상징과 표 계산의 도구로 계속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 가능한 목표와 단계적 전략으로 재설계할 것인가. 대통령의 ‘희망 고문’ 발언을 각자 유리한 해석으로 소비하는 순간, 새만금은 또다시 10년을 잃게 된다. 중앙과 지방, 여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것은 해석 경쟁이 아니라 책임 있는 결단과 실행이다. 행정과 정치권이 모호함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새만금의 희망 고문은 계속될 뿐이다.
  • 글쓴날 : [2025-12-15 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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