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일본총리의 ‘대만유사=존립위기사태’ 발언으로 야기된 중·일 갈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일본은 맞대응을 자제하면서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0년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이다오)를 둘러싼 충돌 때, 중국정부가 희토류 중단과 고위급 회담 취소, 문화교류 중단으로 압박하자 일본정부는 이에 굴복해 중국인 선장을 기소하지 않고 석방했다. 하지만 이 여파로 2012년 12월 총선에서 일본민주당은 극우 아베정권에게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이번 사태는 2016~17년 사드(THAAD) 사태 당시 우리가 겪었던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압박을 연상케 한다. 당시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한국에게 비공식적인 경제보복을 가하며 미국에게 불만을 표시한 이른바 살계경후(殺雞儆猴)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위 ‘핵심이익’을 건드린 일본에게 가혹한 처벌을 가해 다른 나라들에게 경고한다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미·일 동맹의 틈을 벌리려는 전략적 의도도 내포한다. 특히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 ‘휴전’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중국은미·중 관계의 경색을 피하면서도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을 압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미·중 경쟁의 격랑 속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명확한 ‘표적’이 되었을 때, 중국의 강력한 경제적·외교적 압박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중 전략경쟁은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각 국가의 근본적인 정체성과 세계관의 충돌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미·중 양국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는 예외주의(Exceptional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예외주의는 ‘국제사회의 일반 조약이나 관습법으로부터 예외주의적 지위를 갖는다’는 주장이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가진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의 가치가 보편적이며, 이에 기반한 미국의 역할과 행동은 국제규범을 초월하여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 경제적 이익, 그리고 주권을 국제적인 합의나 규범보다 우위에 둔다는 ‘예외주의’적 사고가 실제 외교정책과 국제관계에서 구체화되었으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MAGA주의(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 하에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조약이나 기구에서 일방적으로 벗어나는 행태는 예외주의의 가장 명확한 사례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이란과 주요 5개국이 합의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 미국에 불공평하고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2018년에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재가입하긴 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및 알루미늄에 고율관세를 부과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상 금지된 일방적 무역보복 조치에 해당하며, 미국이 국제무역규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사례다. 또한 자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요구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대체되었고,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로 한미FTA가 일부 실효성이 약화되었다.
미국은 자국민이나 군인들이 외국 법정이나 국제형사사법기구에 의해 기소되거나 처벌받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이에 대한 예외를 주장한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자국민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을 거부하며 ICC 설립 조약(로마 규정)에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조사하려는 ICC 검사들을 제재하는 등 국제사법기관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국예외주의에 맞서는 것이 중국예외주의이다. 이는 5천 년 문명과 중화사상, 즉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현대 공산당의 통치이념과 결합한 것이다. 중국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 개념을 거부하고, 자국의 발전모델과 강력한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서방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 이러한 예외주의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는 소위 전랑외교(戰狼外交)라는 공격적인 외교형태로 표출되었다.
중국예외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며 남중국해 대부분을 아우르는 ‘구단선(九段線)’의 영해 주장이다. 중국은 구단선을 근거로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화했다.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근거해 중국의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으나, 중국은 이 판결을 ‘불법적이고 무효’라며 전면 거부했다. 이는 국제법이라는 보편적 규범보다 자국의 역사적 해석과 국력을 우선시하는 태도다.
중국예외주의의 또 다른 사례는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이다. UNCLOS는 EEZ에서 연안국 주권을 넘어선 항해와 상공비행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EEZ 내에서 타국의 군사활동, 정보수집, 해양조사활동을 자국 안보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예외주의 태도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주변국과 해양분쟁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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