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외교노선의 기본구도에 대한 입장이다. 한미동맹을 한국 외교의 핵심 축이자 보편적 가치 실현의 기반으로 보는 동맹파는 자유,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안보와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주파는 한국의 독자적인 국익과 판단에 기초한 전략적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며, 강대국 간 대립 구도에 휩쓸리지 않고 포괄적인 국익(안보, 경제, 남북관계) 극대화를 위해 독자적인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강대국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입장이다. 노골적 친미파는 한미동맹을 절대적 가치로 두고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경제안보 프레임워크에 적극 협력하여 진영외교를 통해 안보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본다. 암묵적 친중파는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고려하여, 대중국 관계를 관리하고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 극대화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들은 ‘안미경중’ 딜레마 속에서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며 중국을 자극하는 행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대화·협상 중심의 평화주의자는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통한 평화 프로세스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핵심 동력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우선하며 적극적인 평화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강력한 억제력 기반을 우선시하는 자주국방론자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현실을 직시하고, 자주적인 억제력 강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본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한국 외교정책이 처한 현실적 딜레마를 반영하며, 외교적 선택의 폭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주변 강대국들은 이러한 국내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외교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국익이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국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국 지전략가인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략적 비전』(2012)에서 미국의 글로벌 지위 하락에 비례하여 주변강국에 의해 지정학적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8개국으로 조지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주변 중동국가, 그리고 대만과 한국을 꼽았다. 앞의 세 나라는 전쟁을 겪었거나 전쟁 중이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와의 국가연합(state union) 결성과 러시아 핵무기의 배치를 통해 대안을 찾았다.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은 자체 핵무장에 친미, 친중 정책을 통해 안보를 추구하고 있다.
나머지 두 나라, 한국과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공통적으로 중국발이며, 특히 한국의 지정학 위기는 단순히 중국의 굴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해양패권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은 선진통상국가로서 석유를 비롯한 원부자재 거의 대부분과 수출상품의 상당 부분을 한반도 주변 해역과 동·남중국해의 해상교통로를 통해 운반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EEZ과 구단선 영해선화와 같은 예외주의 정책을 통해 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제해권을 강화하고 있어 우리의 해상교통로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지위 하락 이후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전략 옵션을 제언했다. 제1옵션은 중국의 지역패권을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고, 제2옵션은 가치와 위협인식을 공유한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해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옛 중화체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제1옵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며, 과거사 문제로 제2옵션에 대해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제3옵션이라고 할 수 있는 자체 핵무장과 같은 독자적인 안전보장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취할 대외전략에 대해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나 과거 경험, 더 나아가 부나 교육 배경 등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자주외교를 지향했지만 현실적으로 동맹 중시 외교를 취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익숙한 70~80년대 운동권의 영향 때문인지, 탈미 자주외교를 주장하는 인사들 가운데는 암묵적 친중파들도 적지 않다. 평화군축론은 우리 안보현실보다 자국의 팽창정책에 반대해 온 서구 진보지식인의 고민과 닮았다.
미국예외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지만, 미국의 패권은 여전히 강력하며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굴기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세계질서를 재편할 만큼의 패권 전환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우리는 중국예외주의와 중국발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하는 전략적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한반도평화와 경제교류와 같은 국익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도 안 된다.
민주진보진영은 민주당이 야당일 땐 단결하지만, 막상 민주당이 집권하면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곤 한다. 하지만 이상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나 종교인, 진보지식인의 주장과 현실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당국자나 정책 자문그룹들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적정 수준의 비판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비난은 오히려 민주당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을 약화시킨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며 국익을 위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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