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언급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 가능성은 단순한 ‘이전 주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에너지 정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구조적 문제 제기다.
이를 두고 ‘현실 감각 없는 발상’이라거나 ‘국가사업 흔들기’로 몰아붙이는 비판은 논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서 본질을 흐리게 하는 단견이다. 오히려 이 문제 제기는 수도권 기업 분산 정책, 지방소멸 위기 대응, 그리고 지산지소 원칙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우선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대원칙에서 보더라도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 재검토는 충분히 공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도체는 국가 전략 산업이자 장기 산업이다. 2019년 수립된 계획이 2030년대 이후의 전력 수급, 기후 위기, 인구 구조 변화까지 자동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특히 반도체 공장 한 곳에 원전 수십 기에 준하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를 계속 집적시키는 기존 방식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국가 전략 사업일수록 환경 변화에 따라 점검과 보완이 전제되어야 한다. 새만금이 주목되는 이유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이라는 관점에서도 이번 문제 제기는 의미가 크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일 공장이 아니라 이를 떠받치는 소부장 등 수많은 협력기업와 연구 인력, 정주 인프라를 동반한다. 이는 곧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인구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전략 산업 거점을 조성하는 것은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지방에 미래 먹거리를 심는 일이다. 이를 ‘지역 민원’이나 ‘정치적 요구’로 격하시키는 시각은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상상력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과의 부합성도 분명하다. 현재 수도권 중심 산업 구조는 장거리 송전에 의존하며 송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건설 지연과 주민 갈등, 계통 불안이라는 문제를 반복해 왔다.
전력을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을 가깝게 하는 지산지소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정책 방향이다. 산업의 ‘속도’만을 이유로 이 원칙을 뒤로 미루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선택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재생에너지가 반도체 산업에 부적합하다는 주장 역시 과도하다. 간헐성 문제는 에너지 저장장치, 그린수소, 계통 보강을 통해 단계적으로 해결되고 있으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RE100을 중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단지를 비현실적 실험으로 치부하는 것은 국제 산업 흐름을 외면한 주장에 가깝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 ‘속도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방향 없는 속도는 오히려 위험하다. 수십 년을 버텨야 할 산업을 단기 완공 논리에만 맡길 수는 없다. 김성환 장관의 발언은 확정된 계획을 뒤엎자는 선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에너지 구조를 고민하자는 문제 제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기가 아니라 토론이며, 고집이 아니라 전략적 유연성이다. 반도체 강국의 길은 수도권 집착이 아니라, 분산과 공존 속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