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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고액·상습 체납, 더는 관용의 대상 아니다

현대 국가를 지탱하는 토대는 국민의 권리만큼이나 의무의 성실한 이행에 있다. 헌법이 규정한 4대 의무 가운데서도 납세의무는 국가 운영의 재원을 마련하고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성실 납세가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조세 정의가 살아 있고 그 신뢰 위에서 국가 정책과 공공 서비스도 정상 작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세금을 회피하거나 체납을 반복하는 일부 고액 체납자들은 이러한 질서를 훼손하며 다수의 성실 납세자들에게 깊은 상실감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최근 전북자치도가 지방세 3천만 원 이상을 체납한 고액·상습 체납자 231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시행하기로 한 것은 조세 정의 회복을 위한 불가피하고도 단호한 선택으로 평가할 만하다. 체납액만 해도 총 253억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재산을 보유하고도 납부를 회피하거나 은닉·도피 정황이 드러난 체납자에게까지 관용을 베푼다면 성실 납세 원칙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조치가 단순한 행정 편의적 결정이 아니라, 예고서 발송을 통한 자진 납부 유도, 출입국 기록 조회, 압류 재산의 실익 분석, 생활 실태 조사 등 다층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법무부와의 협의를 통해 6개월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출국금지 역시 법적 정당성과 절차적 신중함을 갖춘 조치로 보인다. 이는 행정권의 과도한 남용이 아니라, 고의적·상습 체납자에게만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물론 출국금지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궁극적인 목표는 체납 세금의 환수와 공정한 조세 질서 확립이다. 전북도가 체납액 전액 납부나 성실 분납, 담보 제공 시 출국금지를 해제하도록 한 것은 이러한 원칙에 부합한다. 더 나아가 재산 압류와 공매, 명단 공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고액·상습 체납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는 일관된 행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조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체납 발생 단계부터 조기 대응에 나서는 예방 행정이 병행돼야 한다. 조세 회피가 결코 이득이 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사회 전반에 각인시킬 때 성실 납세 문화는 더욱 공고해진다.

동시에 행정의 냉정함과 함께 필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경기 침체나 생계 곤란 등 불가피한 사유로 체납에 이른 납세자까지 동일한 잣대로 다뤄서는 안 된다. 분납 제도, 체납처분 유예, 복지 부서와의 연계 지원 등을 통해 일시적 어려움과 고의적 체납을 명확히 구분하는 세심한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조세 행정이 처벌이 아닌 신뢰 회복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다수 도민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조세 정의의 출발점이다. 전북자치도의 이번 조치가 ‘내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끊고, ‘성실 납세가 존중받는 사회’라는 원칙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글쓴날 : [2026-01-06 18: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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