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김창길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이 전북연구원이 주최한 한 포럼에서 “애그테크(Ag-Tech)를 통해 농업의 플랫폼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는 제안을 해 주목을 받았다.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불안, 농업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 생산비 상승과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밀려오는 오늘의 농업 위기는 더 이상 부분 처방이나 단기 대책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구조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김 전 원장은 전북연구원이 주최한 ‘백년포럼 43강’에서 이러한 농업 위기의 본질을 짚으며 해법으로 애그테크 중심의 플랫폼 농업 전환을 제시했다. 김 전 원장은 “AI가 설계하고, 데이터가 실행하며, 사람이 완성하는 플랫폼 농업으로의 구조적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스마트팜 장비를 보급하거나 자동화를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생산·가공·유통·소비 전 과정이 데이터와 AI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농업 시스템을 의미한다.
애그테크는 Agriculture(농업)와 Technology(첨단기술)의 합성어로, 2010년대 초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본격 확산됐다. ICT, 인공지능, 빅데이터, 바이오, 에너지 기술이 농업과 융합되며 농업을 하나의 고부가가치 산업 플랫폼으로 재구성하는 개념이다.
김 전 원장은 이를 ‘플랫폼 전환(Platformic Transformation)’이라고 규정하며, 기존의 시설·장비 중심 농정 패러다임이 디지털·AI 기반 구조로 이동하지 못한 점을 한국 농업의 한계로 지적했다.
그는 특히 AX(AI Transformation)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X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산업과 조직의 운영 방식,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전환을 뜻한다.
김 전 원장은 “AI는 애그테크의 두뇌이고, 애그테크는 AI가 작동하는 몸체”라고 표현하며, 두 요소가 결합될 때 농업 혁신의 속도와 범위가 비약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농업 선진국들은 이미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예측 농업, 맞춤형 생산과 유통을 통해 농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전북형 애그테크 전환은 중앙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지역이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실증하며 확산시키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농업 데이터의 공공적 축적과 개방, 지역 단위 실증단지 조성, 스타트업과 농업인이 함께 참여하는 리빙랩 구축 등은 플랫폼 농업으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특히 생산 현장에서 축적되는 토양·기후·생육·유통 데이터가 민간 혁신과 결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요구된다.
또한 애그테크 전환은 농업 소득 안정과 직결되어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술 도입이 비용 부담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단계별 지원과 성과 공유 구조를 마련하고, 청년 농업인과 기술 인재가 전북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 조성도 병행돼야 한다.
전북이 애그테크를 통해 농업의 생산성과 환경 지속가능성,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면, 이는 농촌 소멸을 막는 실질적 해법이자 국가 농정 전환의 선도 사례가 될 뽄 아니라 결국 전북의 선택과 실행력이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 좌표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북은 국내에서 가장 유리한 출발선을 가진 지역으로 평가된다. 김제–남원–장수를 잇는 스마트농업 삼각벨트, 국가식품클러스터, 생명공학·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기반 등은 전북이 전국 최고 수준의 농생명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국가균형발전 전략인 ‘5극3특’ 구도 속에서 AX 기반 연구·실증 거점으로 도약할 잠재력도 충분하다.
더 나아가 애그테크 기반 플랫폼 전환은 농업 정책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농정이 개별 농가 지원과 시설 확충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데이터 표준과 알고리즘, 서비스 설계가 핵심 정책 수단이 된다. 이는 행정의 역할 또한 집행 중심에서 설계·조정 중심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전북이 이러한 변화를 선도한다면 농업은 더 이상 낙후 산업이 아닌, 기술과 인재가 모이는 전략 산업으로 재인식될 수 있다. 플랫폼 농업은 곧 농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공공 인프라다.
그러나 과제 역시 분명하다. 고령 농업인의 기술 수용성 한계, 데이터 표준화와 AI 실증 기반 부족, 민간 투자와 소프트웨어 중심 생태계의 취약성은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다. 기술이 현장에 안착하지 못하면 혁신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업인을 부담의 대상이 아니라 플랫폼의 핵심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김 전 원장은 전북형 애그테크 AX 비전으로 ‘데이터·AI 기반의 지속가능한 농생명산업 전환 허브, 전북’을 제시하며 △데이터·AI 기반 혁신 △기후스마트·탄소중립 농업 △인재와 기술이 순환하는 혁신 생태계 △민간 투자와 시장 연계 강화라는 4대 전략을 강조했다. 이는 농업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제 전북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애그테크를 단순한 시범사업으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농업의 플랫폼 전환을 이끄는 국가적 실험장이 될 것인가. 구조적 전환의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전북이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한 농업 혁신을 선도할 때, 농업 위기는 새로운 성장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