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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의사 늘려야 지역 균형 발전도 가능(2)

안종주 칼럼 / 보건학 박사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의사들과 대결해야 할지도 모를 벼랑 끝에 서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역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려면 의사들을 지역으로 오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지역의사제 정착이다. 철저하고 정확한 현실 분석과 전략으로 무장해 의사 집단이 반대 핑계를 댈 수 없게끔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지난해 12월 30일 2040년에는 부족 의사 수가 5700~1만 1136명이라고 발표하면서 의사와 정부 · 국민 간 대결이 시작됐다.

정부는 추계위 결과 발표 뒤 이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1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2차 회의를 열어 추계위 결과를 보고 받았고 1월 13일 3차 회의에서 ▲2027년 이후 의대 정원 증원분을 전부 ‘지역의사제’ 정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공공의료사관학교(가칭) 설립 여부와 의대 미설치 지역 신설 의대의 정원·배출 시점 ▲2026학년도 모집인원(3058명) 대비 2027학년도 입학 정원 증가 폭 상한 설정 ▲2027~2031학년도까지 5년간 동일 정원을 적용하고, 2037년을 수급 관리 기준연도로 삼은 뒤 2029년에 다음 수급 추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3일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의정연)이 분석한 자체 추계 결과를 발표해 의사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2035년경에 3161명의 의사 과잉이 될 것이라고 추계위 결과와 정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의정연은 추계위가 사용한 모형의 부적합성과 AI(인공지능) 생산성 향상(30~50%)의 미반영 등을 지적하며 자신들은 의사들의 실제 근무시간(연 2303시간)과 미래 환경 변화를 반영한 모델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의협의 이런 발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몽니를 부리고 이를 토대로 또 정부 · 국민과 전면전을 벌이기 위한 밑자락 깔기이거나 앞으로 정부가 최종 결과를 발표할 때 자신들의 주장을 더 강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의협의 이런 전략에 추계위에 참여한 환자 ·시민·노동단체의 반발은 거세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민주노총, 경실련 등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는 최근 공동 입장을 성명으로 내어 “의료계는 추계위 과정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정과 변수를 끝까지 밀어 넣어 추계의 하한을 낮추는 데 영향력을 행사해 놓고, 이제 와서는 ‘근거가 없다’며 결과 전체를 흔드는 전형적인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 추천으로 추계위에 데이터 기반 보건의료 연구전문가로서 참여한 고려대 의대 정재훈 교수는 에서 형식적인 다양성과 민주성을 강하게 의식한 위원회 구성의 아쉬움과 함께 장기 추계에 시계열 모형을 선택한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우리에게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지만 흩어져 있어 앞으로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정제하여, 정교한 추계가 가능한 표준 데이터셋을 미리 구축해 두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을 부문별로 다양하게 참여케 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물론 존중해야 하지만 특정 부문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혜안 있는 탁견을 지닌 전문가들을 모아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단지성으로 도출한 의견에 정부가 무게를 두고 받아들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 국가 미래와 환자, 국민 전체를 위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 의료 모습을 그리기가 쉽지는 않을 터이다. 또 20년, 30년 후 의료기술과 한국인의 삶의 행태가 어떻게 바뀔지, 환자와 의사들의 행태가 어떻게 바뀔지도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이는 결국 어느 정도의 의사가, 어느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 적절한지 추계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의사들의 행태, 보건의료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몇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첫째, 매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노동계와 경영계가 극한 대립을 할 때를 되돌아보면 경영계는 거의 매번 동결을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의료계는 이런 점에서 경영계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경영주들은 회사 문을 닫지 않는데 의사는 파업한다는 점이 다르다.

둘째, 특정 이익집단이나 회사가 정책이나 제품과 관련해 연구기관이나 연구자한테 청부한 사안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돈을 댄 곳이 이익을 얻도록 분석과 연구를 짜 맞춰 결과를 내놓는다는 사실이다. 의협의 추계 연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의사 적정 수를 결정할 때, 많은 것이 모자란 것보다는 더 낫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자라면 환자가 불편하고, 심각한 문제가 많이 생기지만 약간 남는 것은 외려 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의사의 보수는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면 약간 줄어들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의대 정원 늘리기 정책에 대한 의사 집단의 반발이 어느 수준까지 갈지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 2000년 의약분업, 윤석열 정부 때의 의사 집단 반발 등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른 다양한 대응 전략을 미리 세워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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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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