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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벤처펀드 1조 돌파 – 성장 사다리를 놓다

김관춘 칼럼 / 주필
전북특별자치도가 비수도권에서는 최초로 누적 벤처펀드 1조 원을 돌파했다는 낭보가 새해 벽두에 날아들었다. 도내 기업가들에게 희망을 전한 이러한 소식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도권 중심으로 굳어져 온 대한민국 투자 지형에서 지역이 스스로 자본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이는 전북 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이 펀드가 ‘장부 속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고용 창출과 매출 증대, 기업 이전과 상장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며 지역 산업 생태계의 ‘희망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지역 기업들은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갖추고도 자금 조달의 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도약의 기회를 놓치곤 했다. 전북의 벤처펀드는 바로 이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반도체 검사 장비 전문기업 ㈜아이에스피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북에서 태동한 이 기업은 도 펀드 20억 원을 포함해 총 55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 고도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역 기업에 대한 투자가 ‘생존 자금’이 아니라 ‘신뢰의 신호’로 작용해 후속 투자를 끌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전북 펀드가 단순한 지원책이 아니라 성장의 사다리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투자의 낙수효과가 고용으로 이어진 사례도 분명하다. 이차전지 전문기업 에너에버배터리솔루션㈜은 도 펀드 15억 원을 바탕으로 총 4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해 완주군에 공장을 설립했고, 직원 70명 중 50여 명을 지역 인재로 채용했다. 지역에 뿌리내린 기업이 지역 청년의 일자리로 응답한 셈이다.

이는 벤처펀드가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 청년 유출을 막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추가 투자 유치를 통해 전북 이차전지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은 지역 산업의 미래까지 함께 그리게 한다.

전북 펀드의 힘은 지역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도권 기업을 전북으로 끌어들이는 자석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린바이오 기업 ㈜팡세가 전북 펀드를 마중물 삼아 본사와 공장을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로 이전한 것은 상징적이다.

15억 원의 도 펀드를 포함해 총 8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이 기업은 전북의 산업 인프라와 정책적 지원이 결합될 때 기업 이전이라는 결단까지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전북이 더 이상 ‘지원만 받는 지역’이 아니라 기업이 선택하는 투자처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벤처펀드의 궁극적 성과는 기업공개(IPO)로 이어질 때 완성된다. 차량 보안 솔루션 기업 ㈜페스카로의 코스닥 상장은 전북 투자 생태계의 저력을 증명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군산에 기업부설연구소를 둔 이 기업은 10억 원의 도 펀드를 시작으로 총 3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마침내 상장에 성공했다. 연구소에서 시작된 혁신이 자본시장에서 평가받고, 다시 지역 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환류되는 구조가 현실이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점은 전북 벤처펀드가 산업 구조 고도화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그린바이오, 차량 보안 등은 모두 국가 전략 산업이자 고부가가치 분야다. 전북이 이들 산업의 실증과 생산, 연구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지역 경제는 단순 하청 구조를 벗어나 기술 중심 성장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지역 내 총생산(GRDP) 확대와 재정 자립도 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벤처펀드는 지방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지렛대 역할도 한다. 행정의 선제적 투자 결정이 민간 자본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이는 다시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전북의 사례는 ‘지방정부가 과연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에 실증적 답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전북 벤처펀드의 성과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심리적 효과’에서도 확인된다. 그동안 지역 창업가와 청년 기업인들 사이에 깊게 자리했던 “좋은 기술이 있어도 결국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체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북에서도 충분히 투자받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경험과 사례가 축적되면서 도전의 문턱이 낮아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자산이자 지역 혁신의 토양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대학과 연구기관, 공공기관의 협력으로 확장될 때 전북은 투자–기술–인재가 선순환하는 자립형 산업 생태계를 갖춘 지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분명하다. 1조 원 펀드라는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기업 유치부터 성장, 상장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투자 지원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투자 이후의 경영·기술 컨설팅, 판로 개척, 글로벌 진출 지원까지 촘촘히 연결될 때 펀드의 효과는 배가된다. 아울러 지역 기업들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투자 절차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민간 자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전북 벤처펀드가 일회성 정책 성과에 머물지 않고 지역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지속 가능한 성장 엔진으로 자리 잡을 때, 1조 원은 끝이 아니라 더 큰 도약을 향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전북만의 성공을 넘어 대한민국 지역 경제 모델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돼야 한다.


  • 글쓴날 : [2026-02-02 13: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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