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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아는데 '증거 없음'… 김건희 봐주기 판결(2)

송요훈 칼럼 / 민들레 편집위원
대선에선 0.73%의 미세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김건희는 ‘셀럽’ 흉내를 내며 영부인으로 호사를 누렸고 여기저기서 명품백도 받고 다이아 목걸이도 받고 고급 시계도 받고 금거북이도 받고 억대의 그림도 받았다. 명태균의 여론조사가 윤석열 당선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계량하여 산출할 수 없으니 판결에 반영하면 아니 되는가?

윤석열은 대통령 당선 다음 날 명태균과 통화했고, 명태균에게 김영선 공천을 약속했다. 김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국민이 안다. 약간의 과장을 하자면, 누구네 집에 숟갈이 몇 개인지 아는 정도로 훤히 안다. 그런데 주가조작 혐의도 여론조사 관련 혐의도 무죄란다.

그 판결에 공감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인터넷 세상에선 돌풍이 일어나고 재판의 권위, 법원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진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이 집단으로 복귀 요구를 했다는 게 생각난다. 수사가 아니라 태업을 했구나, 무죄 판결이 나오도록 수사를 했구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러면서 보완수사권을 달라고?

범죄가 100% 입증되지 않을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 멋진 말이다. 왕과 귀족이 법 따위를 우습게 알던 시절에 힘없는 평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형사소송의 대원칙이 아닐까?

그런데 독재 권력이 법 위에 있던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없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던 이들에겐 그 법언이 왜 적용되지 않았는가. 정치적 표적을 물고 뜯는 검언 합작의 마녀사냥이 횡행할 때는 왜 그 금과옥조 같은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는가.

증거가 없다고 한다. 솔로몬왕은 아이의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둘로 갈라 반씩 가지라고 했다. 증거가 없어서 그랬을 것인데, 그러자 진짜 엄마가 나타났다. 오늘날의 판관에겐 왜 그런 지혜가 없는가.

사유와 번민이 없는 판결, 법원 밖의 세상과는 단절된 판결, 법조문에 끼워 맞추는 기계적 판결은 좋은 머리로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고 빠져나가는 법 기술자와 법꾸라지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AI가 무서운 건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바둑의 정석이 뭔지도 모르던 알파고가 학습에 학습을 거듭하더니 바둑 천재 이세돌을 이겼다. AI에게 판결을 맡기면, 학습에 학습을 거듭하여 지혜로운 솔로몬 왕도 감탄할 판결을 내놓을 것 같다.

우인성 재판장은 김건희에게 형량을 선고하기에 앞서 대통령 배우자인 영부인은 법령상 권한이 부여된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므로 그에 걸맞은 처신이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높은 청렴성과 염결성이 요구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또한,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토대 중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공정이고, 모든 일은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데, 이러한 공정을 해하는 것이 부패이고, 부패는 금전적 청탁과 필연적으로 결부되며, 영리 추구는 거개 인간의 본성이긴 하나 지위가 영리 추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권력에 대한 금권의 접근은 다반사일 수 있으므로 지위가 높을수록 이를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피고인 김건희는 자신의 지위를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오용하였고 청탁과 결부되어 공여된 고가의 사치품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수한 다음 이를 가지고 자신을 치장하는 데 급급하였다며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여 굳이 비싼 재물을 두르지 않더라도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며 김건희를 엄하게 꾸짖었다.

그런데 형량은 고작 1년 8월이란다. 주가조작은 주식시장을 교란하는 불공정 행위이고, 여론조사 조작은 선거의 민주적 기능을 방해하는 불공정 행위인데,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토대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공정이라면서, 김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국민이 아는데도 무죄 판결을 내린다. 매를 드는 것 같더니 사탕을 주는 꼴이다.

법의 적용에는 권력을 가진 자이든 권력을 잃은 자이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한단다. 그 말은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에게 정치 보복을 할 때 적용해야 한다. 김건희 수사와 재판이 정치 보복인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어려운 고사성어는 아는데 쇠귀에 경 읽기라는 쉬운 속담은 모르는 게 아닐까.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의 모든 걸 법조문에 끼워 맞추는 기계적 판결을 공정한 판결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우리 법원에선 왜 이리도 솔로몬을 만나기 어려운가... 별별 생각이 스친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에게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판사들에게 해줘야 할 것 같다. 윤석열의 12.3 계엄은 내란이고 친위 쿠데타이며, ‘위로부터의 내란’이 ‘아래로부터의 내란’보다 위험하다는 판결은 단지 법조문에서 나온 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조인 양성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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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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