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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에 미(美)친 청년, 문창희가 그리는 초록빛 미래


전주 도심의 화려한 불빛이 사그라지는 경계선, 빌딩 숲의 소음 대신 바람에 실려 온 알싸한 향기가 먼저 코끝을 간지럽히는 곳이 있습니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13,000평의 광활한 초록 바다, 그곳엔 미나리에 인생을 걸고 ‘미(美)’친 청년 문창희 대표의 삶이 푸르게 일렁이고 있습니다. 작업장에 들어서면 마중 나오는 싱그러운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물결 사이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그가 서 있습니다. 바로 4년 전, 운명처럼 미나리 논으로 뛰어든 ‘창희나리’의 주인공입니다.

아버지의 못다 한 꿈, 미나리로 피워내다
문 대표에게 농업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거친 손등을 보며 자라온 그에게 미나리 밭은 놀이터이자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지시며 가업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3남매 중 아들이었던 그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문 대표는 “농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정직한 일입니다. 항상 배움의 자세로 미나리의 마음을 알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하고 한다. 그의 눈빛에는 서툰 초보 농군의 당혹감 대신, 13,000평이라는 광활한 대지를 책임지는 젊은 농부의 단단한 진심이 서려 있습니다.

물 관리의 예술, 그리고 ‘꼬시락 병’과의 사투
미나리 농사는 흔히 ‘물 관리의 예술’이라 불립니다. 전주 미나리는 논에 물을 가득 가두어 재배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잎이 무르고 갈색으로 변하는 ‘꼬시락 병’이 찾아옵니다. 처방약도 없어 한 해 농사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이 무서운 불청객을 막기 위해 문 대표는 매일 새벽 미나리의 상태를 살피는 고단한 일상을 자처합니다.
그는 전통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우스 시설에 그물망을 도입해 물을 적게 가두면서도 품질을 높이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지하수로 깨끗하게 세척해 포장까지 책임지는 철저한 위생 관리를 통해 소비자에게 신뢰라는 가치를 배달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시각으로 농업의 미래를 설계하다
청년 농부의 앞날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습니다. 땅을 구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은 매 순간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는 대신 전주시 농업기술센터를 집처럼 드나들며 지식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이제 문 대표의 시선은 더 먼 미래를 향합니다. 인력에 의존하는 전통적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수경 양액재배 스마트팜 시설도입을 준비 중입니다. 기후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1년 내내 균등한 고품질 미나리를 생산해내겠다는 그의 도전은 이미 뜨겁게 시작되었습니다.

4-H, 함께 걷기에 외롭지 않은 길
외로운 영농 생활에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전주시 4-H 연합회동료들이었습니다. 지·덕·노·체(Head·Heart·Hands·Health)의 정신 아래 모인 청년 농부들과 소통하며 그는 '함께'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비록 농업 중심지가 아닌 도심형 농업을 하는 전주지만,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동료들이 있기에 그는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농업 멘토인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있기도 하지만, 미나리가 쑥쑥 자라나 무사히 출하될 때 느끼는 보람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고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농업, 준비된 자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
귀농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문 대표는 다정한 격려와 함께 뼈 있는 조언을 잊지 않았습니다.
“'농사나 지어볼까'라는 막연한 도피처로 농업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이유와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면, 대한민국 농업이라는 세계는 여러분을 언제든 뜨겁게 환영할 것입니다.”
향후 5년, 10년 뒤 문 대표는 미나리 가공 사업인 숙취 해소 음료 ‘깨나리’를 안착시키고, 스마트팜을 통해 가장 위생적이고 향긋한 미나리를 전 국민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전주의 푸른 미나리 논 위로, 한 청년의 꿈이 싱그러운 향기가 되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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